삼복(三伏). 초복·중복·말복 등 7, 8월 여름철의 가장 더운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복’ 자에 그 상황이 압축돼 있다. 감당하기 힘든 무더위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왕조 시대에도 삼복더위에는 두 손을 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417년 태종은 이조판서가 인정전(仁政殿) 재건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복 중에 백성을 부려 고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1507년 중종은 “대신이 오래 앉아있는 것이 미안하다”며 신하들과 학문을 논하고 국정을 협의하는 경연(經筵)을 “삼복이 지나기까지 정지하라”고 했다. 1650년 효종은 “삼복더위가 타는 듯하니, 감옥을 돌아보고 죄가 가벼운 자를 석방하라”고 했다. 일을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조상들이 휴식 못지 않게 중요시한 건 몸보신이다. 대표적인 복날 보양식이 삼계탕이다. 닭 속에 인삼 황기 대추 찹쌀 등을 넣고 푹 고아 만든 삼계탕은 폭염을 견디며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유력한 에너지원이다. 그 명성은 해외에서도 자자하다. 중국 영화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은 삼계탕 마니아다. 그는 2003년 오페라 ‘투란도트’ 준비차 방한해 한 달 넘게 머물 시절 매일 삼계탕을 먹었다. 이듬해 영화 ‘연인’ 홍보차 다시 방한해 그 경험을 전하며 동료들에게 삼계탕을 권하기도 했다. 그는 삼계탕을 ‘진셍(인삼) 치킨 수프’라고 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도 소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삼계탕을 한국 최고의 요리로 소개했다.
그런 삼계탕을 16일 초복에는 먹기 어려울 것 같다. 1998년 외환위기 때에 버금가는 고물가 탓이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의 삼계탕 1인분 평균가격은 1만4714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1만3857원)보다 6.2% 올랐다. 음식점 가운데 삼계탕 가격을 수천 원씩 인상한 곳도 적지 않다. 집에서 요리해 먹기도 쉽지 않다. 핵심 재료인 생닭의 경우 500g짜리 영계 한 마리 도매가격이 2500원으로, 작년 대비 39% 급등했다. 여기에다 인삼 마늘 대추 등 삼계탕에 들어가는 필수 식재료 가격도 10~50% 치솟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보양식 삼계탕이 ‘금계탕’으로 변했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권은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다. 올해 복날 서민이 삼계탕 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라도 갖고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왕조 시대의 임금은 백성의 건강을 염려해 쉴 수 있도록 했는데, 민주주의 시대 위정자들에게선 그런 관심도 안 보인다. 복날, 우리 정치는 퇴행하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