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97세대(1990년대 학번·1970년대생)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주로 40대 정치그룹에 여론이 쏠린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영삼(당시 44세) 의원이 나이 많은 후보를 지명했던 야당 관행을 비판하면서 내세운 ‘40대 기수론’을 빗대 ‘신(新)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반면 김대중(45세) 이철승(48세) 의원까지 가세해 신민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 나서 파란을 일으켰던 1970년대 ‘40대 기수’들과 이 시대 40대 정치그룹의 단순 비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시대 상황이 다른 데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치적 위상과 의미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도 97세대는 앞선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를 밀어낼 정치교체의 주축 그룹인 것은 사실이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세상을 이끌고 있는 86세대 정치그룹은 오랜 기간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뒤 이은 세대교체 그룹 부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거역할 수 없는 세월 흐름에 따른 ‘자연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에서는 격동의 시기마다 ‘숫자 딸린 세대론’과 맞물린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해 앞선 정치세력 뒤를 이어 개혁의 주체가 됐다. 세대교체 당시에는 신구 정치권력 간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권력투쟁까지 벌어졌다. 정치권에서 거친 물살이 소용돌이쳤다고 할까. 돌이켜보면 정치세력 교체가 물 흐르듯 이뤄진 느낌이다. 때론 느리게, 어느 순간엔 빠르게 속도가 달랐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세월을 이길 수 없으니까.
1948년 정부 수립 2년 뒤 터진 6·25전쟁을 겪은 사람들을 ‘6·25세대’라 했다. 그들은 1950년대 고달픈 삶을 살았다. 동족상잔의 전쟁 뒤 폐허가 된 국가 재건에 앞장선 이들은 ‘반공세대’로 불렸다. ‘6·25세대’ 정치그룹은 전후 혼돈의 세상 극복과 위기의 나라 세우기가 우선이었다. 이후 등장한 ‘4·19세대’와 ‘6·3세대’는 정치권에서 선명한 활약을 펼쳤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웠다.
1960년 4·19혁명 때 변혁의 물결을 주도한 4·19세대는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로 전후 2세대다. 같은 해 벌어진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1961년 5·16군사정변 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사회 주력 세대가 됐다. 4·19세대는 1964년 6월 3일 한일회담에 반대한 6·3사태를 주도하며 시위에 참가했던 6·3세대와 함께 한국 학생운동과 반정부·민주화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정계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언론·문화·학술계 반체제 인사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이들 세대의 역사적 소임은 마무리됐다.
1980년대 민주화를 외쳤던 86세대 정치그룹의 정치판 주류세력 등장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다른 세대보다 인구 수가 많았던 86세대의 정치권 유입이 대규모로 이뤄진 점은 특별나다. 이들 정치그룹은 ‘장기집권’ 중이다. 어느 덧 86세대의 40년 전 ‘민주화 자산’은 빛이 바랜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 물결이 거센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새로운 리더십의 미래 지도자 등장을 바라는 국민 여론 형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86세대 정치그룹은 앞 세대의 썩은 정치를 비판하고 독재권력에 저항의 몸부림을 쳤다. 그들도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들이 겪었던 선배 세대와 유사한 모순을 반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86세대 용퇴론’이 등장한 연유다. 21세기 들어 시대의 활동 주역이었던 86세대 정치교체는 시간 문제다.
97세대의 정치적 돌풍과 파괴력은 미지수라는 솔직한 평가가 나온다. 실제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뒤 바람이 분 ‘97세대 역할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적은 편이다. 때가 되면 이들 세대 정치그룹 중 상당수는 국정 운영의 역사적 책무를 맡게 된다. 아직도 실력이 덜 여물었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되돌아볼 일이다.
나이를 잣대로 정치권에서 밀어내서는 안 된다. ‘100세 시대’ 팔팔한 60~80대 정치인들이 시대를 읽는 혜안과 경륜을 바탕으로 국가 지도자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이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지난 시절의 낡은 틀에 갇혀 기득권 유지와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 연대에만 치중한 세력은 존재 차제가 국가 발전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용퇴론이 거론되는 86세대 정치그룹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다음 세상을 이어갈 세대라고 무조건 정치권의 주류 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대 흐름을 꿰뚫지 못하고, 미래 지향적인 철학도 없이 앞선 기득권 세대 비판만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비전과 자질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치교체 주역으로 선택받을 리 만무하다. 정치판을 갈아치울 위치에 서고 싶다면 역량을 더 키워야 할 게다. 어영부영하다 뒤따라 치고 올라오는 다음 세대 정치그룹이 몰고올 빠른 물살에 휩쓸릴 수 있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