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나눈 우정, 미래를 여는 동행’은 대한민국과 중국이 수교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문화교류의 길을 열자며 함께 만든 슬로건이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와 중국 문화관광부는 지난해 9월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을 열고 이 슬로건을 공개했다. 앞서 양국 정상은 같은 해 1월 한중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한중 문화교류와 협력을 복원하고 촉진하고자 ‘한중 문화교류의 해’를 선포했다.
오는 8월 24일이면 한중 수교 30주년이다. 많은 사람이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중 문화교류의 해’ 선포나, 이를 기념한 행사 및 슬로건 발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게다가 양국 정부 부처가 챙기는 교류사업이 교육학술 지방교류 공연전시 청소년교류 등 모두 160개라니.
수치로 확인하고 피부로 느끼는 수교 30주년 의미와 달리 냉랭한 두 나라 관계의 현주소라 하겠다.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가 그만큼 만만찮다는 이야기다. 수천 년을 이어온 두 나라 교류사를 생각한다면 진일보한 새 국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일 수도 있다. 20주년이던 2012년 베이징 기념 행사장인 인민대회당에 당시 시진핑 부주석이 참석해 축하할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급변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92년 수교로 우호협력 관계를 맺은 한중은 1998년 21세기 협력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질적 발전을 거듭했다. 그 틀 속에서 인적 물적 교류 진전이 눈부셨다. 수교 첫해 64억 달러이던 교역량은 2021년 3015억 달러로 47배 증가했다. 인적 교류는 첫해 13만 명에서 2014년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전쟁 적대국이 평화라는 돌다리로 쌓은 성과다. 탈냉전의 구조적 변화가 힘을 보탰고, 중국 개혁개방 정책과 한국 북방 정책이 맞아떨어졌다. 1989년 12월 미국과 소련 정상의 냉전 종식 선언과 1990년 한국과 소련 수교에 더해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 올림픽,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양국 교류를 도왔다.
그사이 중국은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시장, 한국은 중국 수입에서 선두권인 고객으로 자리잡으며 영원한 이웃으로 상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뿔싸! 불편한 이웃의 화근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한중 마늘분쟁과 중국산 김치파동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및 동북공정에 이어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한중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어느덧 중국은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나라가 됐으며, 세상은 탈냉전에 이은 신냉전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 핵 문제와 코로나19 사태라는 미증유의 도전이 더해졌다.
이 때문에 상호존중 상호평등 상호신뢰 상호이익의 상생협력이란 한중 수교의 근본적 취지를 곱씹어보게 된다. 중국은 2개의 100년, 즉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인 2021년과 신중국 건설 100년인 2049년이란 목표를 당당히 내세워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고 한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를 이끌 지도자로 입지를 다지며 지난해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시작으로 7월 창당 100주년에 이어 올해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거쳐 오는 가을 새 지도부가 결정될 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몽’을 향한 시 주석의 새로운 리더십 출발을 앞두고 동북아시아에 긴장감이 더한다.
한국도 큰 변화를 맞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중 관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존중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면, 중국에 해야 할 말은 하겠다는 자세라는 점이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서울에서 만나 한미 가치 동맹을 강조하면서 이전과 뚜렷하게 달라진 자세로 풀이된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와 글로벌 공급망 공조에서 두드러진다. 윤 정부 기조를 두고 우려의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한국에 편안한 이웃일 때는 뭔가 중국에 필요한 것이 있을 경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만큼 자강의 자세가 중요하다. 거기서 상호존중의 균형력이 생긴다.
지난주 목요일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 3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양국 정부에 한중 관계 미래상을 제언할 공동 보고서 초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한중 미래 협력 비전을 담을 예정이란다. 그 공식적인 보고서의 피가 되고 살이 된 내용들이 같은 날 부산에서 열린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주관 세미나에서 쏟아졌다. 유구한 교류의 공통 인자를 보유하고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 두 나라 정치가 이를 담아내는 큰 그릇 역할을 하기 바란다.
정상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