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하루를 창가에 서서 조망한다. 그녀를 처음 본 날은 갑자기 더워진 5월 한낮이었다. 5월인데 30도가 넘는다니. 나는 푸념을 가득 입에 물고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아 걷고 있었다. 그녀가 유모차를 밀며 마트를 지나쳤다. 나는 그녀와 유모차를 피해 마트로 들어갔다. 그녀는 여느 아기 엄마와 다르지 않은 차림이었다.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카락이 모자 밑으로 흘러내리고 바지 밖으로 반쯤 빠져나온 티셔츠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마트 근처 빵집 앞에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다시 코너에 있는 편의점을 지나다 정류장 앞 약국을 지나다 그녀와 마주쳤다.

유모차만을 밀며 걷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처럼 길을 따라 걸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곳은 아파트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놀기에 너무 더운 한낮. 나는 “어”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고 집에 도착해 창가에 서서 놀이터를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움직임 없이 허공에 시선을 던져놓은 채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와도, 소설을 한 편 읽고 와도 그녀는 앉아 있었다. 세상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은 오후, 유리처럼 산란하는 햇살에 갇혀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앉아 있었다. 느닷없이 아기가 울기 시작할 때까지. 그녀는 아기가 발버둥 치며 울 때까지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나도 모르게 “위험해”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위해한 것이라곤 햇살밖에 없는 청명한 날이었는데.

나에겐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한 조카가 있다.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된 조카는 태어나서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자랐다. 직장을 다니던 올케를 대신해 잠시 직장을 쉬던 언니와 주부였던 어머니, 학교 다니던 내가 시간을 쪼개 조카를 돌봤다. 말하자면 할머니와 고모의 공동 육아였던 셈이다. 조카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깟 애 하나 돌보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이냐며 사람들은 쉽게 말했지만, 애 하나 돌보는 게 너무 어려웠다.

두 시간마다 젖병을 물려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유도 없이 갑자기 열이 오를 때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낮에 무엇을 잘못 먹인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올케에게, 오빠에게 죄인처럼 말하곤 했다. 조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배로 늘었다. 조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것이나 만지고 입에 넣었다. 나는 하지 못하게 제지해야 했고, 조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잘 돌보고, 잘 견딘 하루가 한순간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런 때였다.

어르고 달래도 멈추지 않는 울음.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조카는 울고,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화를 내고,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면 나에 대한 모멸감에 몸서리치며 조카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아슬아슬 위태로운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놀이터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가 신경 쓰였다. 좁은 집에서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알고 있다. 기온까지 오르고 더워지기 시작하면 집은 감옥이며 지옥이 된다. 누군가는 또 “아이를 키우는데 우울할 틈이 어디 있어, 그깟 애 하나 키우면서”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이 육아는 힘든 일이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깟 애 하나 키우면서’라는 말은 버젓한 성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아기를 돌보는 엄마에겐 너무 아픈 말이다.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 10명 중 1명꼴로 산후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산후 우울증은 우울감보다 불안감과 짜증 무기력 등으로 나타나며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집중력이 저하될 뿐 아니라 쉽게 화를 내게 된다고 한다.

놀이터에 앉아 있던 그녀에겐 가족과 주변인의 배려와 도움은 꼭 필요하다. 수많은 그녀에게 유난 떨지 말라는 아픈 말 대신 짐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등을 토닥토닥해준다면 그녀들은 ‘82년생 김지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손이랑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