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 한국에 온 유럽인이나 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어땠을까? 세련된 양복을 입고 과학 문명을 향유하던 외국인의 눈에는 불편한 기와집이나 초가집에 살며 갓 쓰고 한복을 입고 살던 한국 사람들의 모습은 새로운 세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궁궐에 사는 임금의 삶이나 상류층 양반들의 삶조차도 그들에게는 미개한 사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때의 모습을 묘사한 서양인의 글과 당시 한국의 풍속을 그린 서양화가들의 작품이 남아 있어, 당시 외국인이 관심을 가졌던 한국의 풍경이나 풍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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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희 ‘화차분열도’. 간송미술관 소장 |
이와 반대로 서양을 방문한 한국인의 눈에 서양의 풍경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도 궁금한 일이다. 외국과의 외교가 익숙지 않은 근대기의 현실은 한국인에게 외국에 나갈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국을 방문해 그곳의 풍경을 그린 청운(菁雲) 강진희(姜璡熙, 1851~1919)의 그림이 전승돼 많은 이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강진희는 본래 일본어 전공의 역관이었지만 영어도 잘했는지 1887년 박정양(朴定陽)이 주미 전권공사로 부임할 때 수행 비서이자 통역관으로 함께 미국에 간다.
강진희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며 많은 새로운 문물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역관의 임무로 일본을 다녀오며 메이지 유신으로 변화된 일본의 모습을 보았지만, 신세계 미국의 모습은 일본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동안 보아온 중국이나 일본의 문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치제도·거주문화·편의시설 등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많은 건물이나 처음 보는 특이한 다리·철교·증기기관차 등 그의 눈에 비친 도회지의 모습은 별세계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문물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러 객차를 달고 달리는 ‘증기기관차’였다. 그는 이 신기한 물체를 그림으로 남기고자 한다. 마침 종이가 마땅치 않아 그곳에서 파는 종이를 구해 숙소에 돌아와 먹으로 그림을 그린다. 간결한 필치로 왼쪽 아래편에 서양식 5층 집을 그리고, 중간 부분에 강물 위를 가로지르는 철교와 기차를 그린다. 그다음 강 건너 들녘에 쏜살같이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또 한 번 그린다. 처음 본 풍경을 그린 탓인지 철교와 기차의 구체적인 모습이 정교하지 못하다. 강물에 띄운 배도 어색한 것으로 보아 실제 현장을 보면서 그린 것은 아니고, 그동안 보았던 것을 상상하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강진희는 이 그림에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라는 이름을 붙인다. 미국 종이에 먹으로 그리다 보니 종이에 먹이 잘 스며들지 않아 먹 맛을 느끼기 어렵고, 산수화를 그리던 작가가 아니라 묘사가 정확하지 못하다. 내용 또한 그림은 조선 그림이로되 내용은 서양 것이다 보니 그 조화가 매우 편치 않다. 그럼에도 먹으로 대충 그린 듯한 붓질에서 조선 문인화의 향취가 난다. 이 묘한 그림 속에는 한국의 한 지식인이 이국적 정서 가득한 먼 외국 땅에 가서 느꼈을 문화적 충격이 그림 속에 절절히 담겨 있어 별격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