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수치를 보기가 겁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상승률이 빚쟁이인 듯해서다. 물가 오름세는 금리 인상을 부른다. 이런 겹악재는 가계 부담을 가중시켜 소비·투자·생산의 연쇄적 위축을 초래한다.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상승)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작금의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자못 심각하다. 품목마다 한 자릿수 인상률을 보기 힘들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달 삼겹살 한근(600g)의 평균가격이 2만3190원으로, 지난해 같은 때(1만7730원)보다 30.8% 올랐다. 미국산 오렌지(25.1%), 치즈(24.1%), 깐마늘(20.1%), 소시지(16.7%), 자장면(14.1%) 등등. 다수 품목의 인상률이 두 자릿수다. 시리얼(9.8%), 냉면(9.5%) 등 10%에 육박하는 한 자릿수 품목도 많다. “못 살겠다”는 소비자들의 아우성이 요란하다. 원자재 인상분을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의 속앓이도 깊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물가는 더 오를 전망이다. 한국은행의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나타난 기대인플레이션율(향후 1년 소비자물가 예상 상승률)도 3.3%로, 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급등하는 물가 속에 생계 유지를 위해 피를 파는 이가 늘어난다는 미국의 일이 우리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은 오는 26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대로 높일 전망이다. 그럴 경우 2007년 7, 8월에 이어 14년 9개월 만에 기준금리가 두 달 연속 오르게 된다. 가계 대출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연간 이자부담이 대출자 1인당 평균 80만 원 늘어난다. 가계의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금리 1% 포인트 상승 때 이자부담이 8조6900억 원 증가한다. 영업이익만으로는 이자를 못 갚는 한계기업도 5.4% 포인트 불어난다. 가계와 기업 모두 부실해져 국가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빠질 우려가 크다.

물가 안정은 코로나19 사태 극복의 최종 과제이기도 하다. 코로나 피해를 입은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투입한 천문학적 재정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손실 보상 등 용도로 59조4000억 원을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면서도 아주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민생 안정과 물가 안정은 당장 필요한 긴급 사안이지만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대처하기가 여간 난감하지 않아서다. 하나가 집토끼라면 다른 하나는 산토끼다. 활동 영역이 다른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 다스려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윤 정부가 시험대에 선 셈이다. 국민의 신뢰 여부는 이번 과제 처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