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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서민 기름’의 배반

  •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   입력 : 2022-05-17 19:55:5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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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10만 마일 달릴 때마다 엔지니어들이 천사로 변한다.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이 자사가 개발한 매연 저감형 디젤 승용차의 친환경성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광고다. 폭스바겐은 이 저감장치를 ‘클린 디젤’이라고 했다. 이는 형용모순이다. 경유를 쓰는 디젤 자동차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가솔린 자동차보다 질소산화물 등 유독가스를 수십 배 많이 배출해 청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의 규제 해제 요구에 밀려 2005년 디젤 승용차의 국내 판매를 허용했다. 2009년에는 디젤 승용차를 친환경차로 분류해 세제 혜택을 주기도 했다.

클린 디젤의 허구성은 2015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의 시험에서 드러났다. 폭스바겐이 주행시험 때만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도록 조작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실제 배기가스 농도는 기준치의 40배였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디젤게이트’의 시발이었다. 그런 악재의 발생에도 경유차의 인기는 높았다. 2016년 국내 신규 등록 승용차의 39.7%가 경유차였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값이 15% 저렴하고, 연료효율도 20% 우월한 게 매력 포인트였다.

그랬던 경유가격이 올해 들어 세계 공급망 차질로 급등하면서 경유차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지난 11일 전국 주유소의 평균 경유가격이 휘발유를 앞지른 뒤 격차가 커지는 모양새다. 전국 평균가격이 ℓ당 2000원에 육박하고, 일부 3000원에 근접한 곳도 있다. ‘서민 기름’이라 불리는 경유가 서민을 배반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 국내 승용차 시장의 경유차 판매량(4만3517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7만4346대)보다 41.5%나 줄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정부 규제 없이도 경유차 운행 감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반환경 차량을 친환경 차량으로 ‘오판’하는 정부다. 기업 이익에 치우친 고의적 오판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서 유사 오류의 재발 가능성을 본다. 인수위는 오는 8월까지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넣겠다고 했다. EU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 최종안에 포함한 것을 선례로 들면서다. 그러나 EU가 2025년부터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점은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 조건 모두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클린 디젤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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