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수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돌산공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풍경은 기대한 그대로였으나, 주변의 환경은 10여 년 전과는 너무나 변해 있었다. 돌산대교, 거북선대교, 공원의 여러 설치물에는 화려한 형형색색의 LED 등이 장식돼 있었고, 공원 곳곳에 젊은 음악가들의 버스킹 전자음향과 더불어 화려한 빛이 밤하늘을 장식했다. 젊음과 역동성이 물씬 풍겨왔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전보다 분명히 세련되고 화려해졌는데, 그래서 더 어색했다. 필자 기억에 이 장소는 아기자기한 섬들 사이로 오목하게 자리 잡은 만(灣)을 잔잔한 바다 물결이 채우고 있었다. 저 멀리 여수산업단지의 대낮 같은 불빛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윤슬처럼 반짝였고,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항구로 돌아오는 고깃배의 집어등이 돌산대교를 지나는 자동차의 바쁜 전조등과 대비되는 참 조용하고 평온한 밤바다였다. 주변이 너무 밝으면 밤하늘 별빛과 달빛의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너무나 화려해진 주변의 빛의 향연에서 여수의 바다는 오히려 초라한 조연(助演)이 돼버린 느낌이랄까? 그 바다가 내내 아쉽기만 했다.

그림= 서상균 기자

부산의 바다도 여러 모습으로 기억한다. 완만한 경사로 썰물 때면 바짓단을 접은 채로 제법 깊은 곳까지 찰방거리며 부드러운 모래를 밟을 수 있는 송정, 붉은색 낙조가 한가득 어깨에 내려앉는 다대포, 기암괴석 사이로 불어오는 세찬 바닷바람의 태종대, 멸치 짠내음이 한가득 코를 자극하는 기장의 바다…. 이렇게 어떤 바다는 후각으로, 어떤 바다는 시각이나 촉각으로 기억되는 다양성이 참 좋다. 만약 부산의 모든 바다가 젊은이들의 음악과 자유로움, 북적거림이 있는 광안리의 모습이 돼버린다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부산 사람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 안식의 장소, 때로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천둥벌거숭이 친구들과 커다란 검정 고무튜브에 매달려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수영하면 누가 더 빠를지’ 궁금해하던 유년시절이 필자에게도 있었다. 갯바위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도, 다양한 해상레포츠로 직접 뛰어들어 바다를 즐기는 사람도,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도 부산의 바다는 무한한 행복을 준다. 필자는 20년 전부터 스쿠버를 즐겨왔다. 폐의 공기가 날숨으로 작은 공기방울이 돼 수경 앞쪽에서 어지럽게 흩어지고 난 뒤,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다 속 세상은 신비한 감동이었다. 온몸으로 전해오는 수압에 익숙해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흡사 어머니의 자궁에 있던 태아시절처럼 평온해진다.

부산의 많은 바다는 물 속 환경파괴가 심각하다. 오염으로 수초를 비롯한 물 속 환경이 파괴돼 시멘트처럼 갯녹음이 생긴 바닥에 성게와 유해종인 아무르불가사리만 좀비처럼 득실거리는 바다는 보기에도 끔찍하다. 관광상품으로 화려한 겉모습 치장보다는 내부를 건강하게 만드는 해양정책과 관리가 새삼 아쉽다. 다양한 해양레포츠 산업도 좀 더 체계적이면서 유기적으로 관리가 됐으면 좋겠다.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환경보전이 최우선으로 병행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내면의 바탕이 외면의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고, 외면의 꾸밈이 내면의 바탕을 이기면 번지레하다”는 말로 리더의 모습을 설명했다. 내면과 외면을 모두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것은 사람이나 바다에게도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기나긴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곧 모든 사회활동의 제한이 풀릴 모양이다. 오랜만에 스쿠버 장비를 정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본다. 그동안 잠시 소홀했던 내면도 다시 추슬러야겠다. 바다가 있어 참 행복한 부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