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은 이미 알려진 바이나, 최근 러시아군이 군사재배치를 위해 철수한 후 공개된 키이우 인근 도시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부서진 건물이나 불에 탄 자동차들이 어지럽게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고, 그곳에서 수습된 민간인 시신만 400구가 넘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시민은 전쟁을 멈추라는 목소리를 내며 거리로 나왔고, 국가와 기업은 경제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접경 지역의 시민은 우크라이나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러시아에도 목숨을 내놓고 전쟁을 멈추라고 외치는 시민이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고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성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가 포르투갈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난 것에 대해 “리스본은 폐허가 되었는데, 여기 파리에서 우리는 춤을 추네”라는 시를 남겼던 것처럼 말이다. 과학기술이 이토록 발달하고 문화가 발전한 시대에, 많은 사람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이 21세기에, 결과적으로 전쟁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아주 뜻깊은 강의를 들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59회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진행한 강의인데, 이스라엘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의 ‘전쟁의 시대, 우리가 말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인가?’였다.

그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저는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전쟁이지, 축구 경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했고, 부모님이 늘 자기 전 들려주었던 이야기에 대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데, 작가의 어머니는 수용소에 갇혀서도 유일하게 빼앗기지 않았던 것이 자신의 어머니가 자기 전 들려주었던 이야기였다고 아들에게 늘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그 소중한 시간을 매일 선물해주었는데, 가끔 어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날이면 아버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버지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굉장히 현실적이었고, 마피아나 술주정뱅이처럼 문제적 인물이 다수였다. 심지어 아버지는 평행세계 이론을 말하며 “나치가 유대인 아이들을 잡아다가 초콜릿을 주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치에게 피해를 입었던 아버지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이상했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도대체 그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지 물었고,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들아,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너무 좁고 편협해. 다른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꿈꾸지 않으면, 절대 그 세계는 만들어지지 않아.”

세상에는 참혹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참혹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 평화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더럽고 깨끗하고, 악하고 선하고, 세상은 이렇게 반듯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선하고 악한가? 무엇이 옳고 그른가? 과연 다른 세상은 가능한가?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 없이, 우리는 결코 아름다운 세상,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없다. ‘평화’라는 말에만 갇혀서, ‘전쟁’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서는 절대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케레트는 강연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종종 문학이나 예술이 세상을 고치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쳐야 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지금 일어나는 이 비극을 똑바로 직시할 용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염원하는 상상력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생명을 위해서 새로운 세계를 목이 터져라 요청할 삶의 의지다. 그 어떤 전쟁도 반대한다!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