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어업규제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 수산업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수산업법 관련 법령으로 규제하는 어선 크기와 어법, 조업구역은 그 큰 틀을 보면 일제 잔재 그대로다. 어업만은 변치 말고 100년 전 했던 그대로 똑같이 하라고 한다.

가령 대형기선저인망 동경 128도 이동(以東) 조업 금지는 1910년대 일본 정부에서 자국 연안어업을 트롤어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연안어업 보호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 관행을 아직도 따라 한다. 지금 노르웨이와 러시아는 5000ｔ이 넘는 대형 어선을 만들어 어획부터 냉동 포장까지 배 안에서 끝내는 첨단기술을 적용, 적은 선원 수로도 어업 효율과 이익을 크게 높이고 있는데도 일본은 남획을 방지한다면서 100년 전에 정한 약 250ｔ 이하 어선 크기 규제를 아직도 지키며 자국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조업하는 1만 ｔ에 가까운 러시아 어선을 그냥 구경만 한다. 이 때문에 일본 수산업은 점점 망해가고 있고 러시아 어획고는 크게 늘어 2015년을 기점으로 러시아가 수산물 생산량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한국은 해방 후 지금까지 어선 규모를 일본 따라 250ｔ 이하로 제한했으며, 지금 해수부는 선진국형 수산자원관리를 한다면서 망해가는 일본 수산업 정책을 착실히 모방하고 있다. 심지어 수산업법령에 나오는 어업 관련 용어도 일본 말을 그대로 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기후변화로 어업 환경이 급변하는데, 이 낡은 수산업 규제가 바뀌기는커녕 족쇄가 돼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 어업은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어획 대상 생물종, 어장 위치와 조업 시기가 크게 바뀌는데도, 해수부는 우리 어민에게 100년 전과 똑같은 어종을 똑같은 조업구역에서 똑같은 배 크기와 어법으로 잡으라고 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할 탄력적 수산정책을 내놓아할 위기상황인데도 총허용어획량제도 확대니 총알오징어 금지체장이니 하는 엉뚱한 규제나 만드는데 몰두한다. 기후변화에 따라 바뀌는 우점종과 어장에 어업인이 적응하도록 어획대상어종과 조업구역, 어선규모에 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하거나 없애지 않으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잡는 어업은 경영악화로 존속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어획대상 어종 변동을 보면, 우리 바다는 북태평양 기후체계 변동으로 1990년을 기점으로 해양생태계가 크게 바뀌었다. 한때 우리 식탁에 자주 올랐던 명태 말쥐치 정어리가 1990년 이후 거의 사라진 대신에 오징어 대구 청어가 새로 돌아왔다. 반면 멸치와 고등어는 꾸준히 잡히고, 최근에는 참조기와 갈치가 비교적 잘 잡힌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우점 어종이 크게 변동하면 어업인이 바뀐 어장에서 새로운 어종을 잡을 수 있도록 탄력적인 수산정책을 펴야 한다. 가령 1990년 들어서 남해에서 말쥐치가 갑자기 안 잡히자 부산 대형기선저인망어선들이 조업구역을 동해로 옮기고 대상어종을 오징어로 바꾼 것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으나, 일제 잔재 수산업법에서 보면 불법조업이다.

일제강점기 이전 기후변화가 뭔지도 잘 모르던 조선시대에도 잘 잡히던 어종인 대구가 안 잡히면 다른 어종으로 어민이 세금을 대납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했다(조선왕조실록 중종 11년, 1516년 5월 21일 기록).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어종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했는데, 21세기 한국 해수부는 기후변화로 우점종이 바뀌든 말든 멸치 중층쌍끌이(권현망)어업은 멸치만 잡으라고 한다. 세계 바다를 둘러보면 멸치 정어리,밴댕이와 같은 청어과 소형부어류가 기후변화에 특히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멸치만 잡으라고 하는 혼획 규제를 크게 완화하거나 없애지 않으면 멸치 어업은 기후변화에 따른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혼획 규제를 견디다 못한 경남 52개 멸치 선단 중 17곳이 올초 해수부 감척사업 때 앞다투어 신청한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혼획을 허용하고 동경 128도를 없애야 근해어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연안어업과 분쟁이 있으므로 서로 양보하도록 해수부가 적극 중재해야 한다. 어업은 문화유산과 같다. 한번 없어지면 다시 살려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