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공간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맹자 어머니의 고사 ‘맹모삼천지교’는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청와대 대신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옮겨 가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회동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용산시대가 안착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길어지는 것은 무익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윤 당선인의 선택은 옳다. 지금의 청와대 터를 천하제일 명당으로 보는 이들이 꽤 있다. 청와대 관람객들은 백악에서 뻗어내린 지세와 잘 다듬어진 내경을 보면 ‘좋은 땅’이라는 해설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의 땀 냄새가 물씬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녹음과 산새 소리를 만끽할 수 있다. 이 보다 좋을 수 없으니 길지라는 말을 부정할 수 있겠나.
하지만 이 땅이 누구에게 길지일까를 생각하면 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청와대 터와 지금의 공간구조는 속세를 떠나 면벽수행을 하거나 피접하는 공간으로는 으뜸이다. 다시 말해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공간이다. 온 국민이 고통 속에서 울부짖어도, 환희의 축제를 열어도 이 곳에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조금 과장하면 청와대는 한국에 있지만 국민이 사는 땅과는 완전히 차단된 별천지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철저히 멀어지는 곳이 청와대란 얘기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것은 도를 닦아 세상을 구원하라는 게 아니다. 무병장수하라고 뽑는 게 아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해 책임지고 일을 하라고 뽑는 것이다. 대통령의 일은 오늘 국민의 표정을 읽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성공한 대통령의 제1조건이 국민과의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청와대는 흉지이다.
얼마 전 청와대 비서가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동 집무사실을 소개하면서 청와대 내부 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산 중에서 그들만의 대화가 어떠했는지 더는 궁금하지 않다. 그런 고민이 국민의 요구와 일치 했다면 부동산 정책이, 일자리 정책이 이리 무참히 실패할 수 있었겠는가. 대통령이 특정 집단사고에 빠진 비서의 보고가 아니라 실제 시중의 여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청와대에서 막히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소통은 국민에게 공개됨으로써 완성된다. 문 대통령이 접견과 회동을 하더라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고민을 나누고 설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과정을 일상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중요한 이유이다.
‘용산으로 간다고 달라질 수 있는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현 청와대 구조를 그대로 가져간다면 변화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경호가 지금과 같이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을 차단하는 수준까지 유지된다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호를 위해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시절 있었던 기억의 한토막을 소개한다. 2011년 초 MB는 출입기자들과 북악을 올랐다. 기자는 “대통령의 비공개 행사가 너무 많고 공개행사도 기자들의 근접취재가 너무 제한된다”고 고언 했다. 당시 같이 있던 홍보수석이 “경호상의 문제”라고 난색을 표했지만, MB는 “(기자들의 취재 확대를) 최대한 고려하겠다”고 했다. MB는 약속을 지켰다. 근접 취재제한은 완화됐다. 대통령이 예고없이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대화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이후 청와대는 다시 빗장을 걸었다. 기자들의 항의에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하던 비서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후 고립된 청와대의 종착점은 알고있는 그대로이다.
용산으로 옮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구조를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지금의 청와대 본관, 비서동, 춘추관 배치를 그대로 용산에 적용하겠다면 옮길 이유가 없다. 예산낭비고 불필요한 논란과 국민적 불신만 키울 것이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가 설명하는대로 대통령과 비서가 복도를 오가며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상시적으로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몇 걸음을 옮기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청와대를 고치더라도 불가능한 요소이다. 국민이 백악의 궁궐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공간에 대통령이 있음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용산시대를 제대로 열면 대통령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