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소설가협회가 신중년 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내 인생을 함께 보다’를 기획했다. 6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18명의 소설가가 ‘학창시절’‘아끼는 물건’‘기다림’‘잊을 수 없는 밥상’등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하고 그림책 작가분과 그림도 그린다. A반 B반 두 반으로 13강, 주2회씩 시작했던 수업이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다. 그 결과물인 문집과 그림책이 도착했다.

육군 장교였고 지금은 회고록 준비와 국토탐방을 진행 중이라는 분, 한국발명진흥원특허 지원 사업에 참여, 다수의 특허를 획득하신 분, 세 자녀의 엄마이자 세 손주의 할머니이자 동부지청 조정위원이신 분, 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분, 팔순의 7남매 어머님까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신중년 인생 글쓰기 수업에 배움의 싹을 틔웠다. 강사 분들은 물론 배우시는 분들의 열의가 뜨거웠다는 후문까지 들으니 마치 내가 함께 참여한 것 마냥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문학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된 터라, 반가움이 앞선 까닭일 것이다.

금요일 오후 다섯 시 만 되면 가슴 두근거리며 다섯 살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니 이야기, 2020년 7월 4일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하늘나라 병원 3층 7호실에 꼭 계시면 언젠가 큰 아들이 문 열고 말없이 웃으며 손 흔들며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아들 이야기,‘황성옛터’를 부를 때면 눈시울을 적시던 할아버지 이야기,‘기다림은 봄날의 아지랑이다’며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 등 마치 아름다운 몇 폭의 수채화를 감상한 것 같다. 어쩜 이리도 한 편 한 편 감동과 재미가 서려 있을까. 나는 세월이 묻어나는 글들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진솔한 마음들에 메말랐던 감정이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그림책을 읽다,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수강생 모집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료에게 글쓰기 수업을 소개했다. 마침 어머니께서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말을 들었다. “얼른 전화해서 수강 신청하시라고 해!” 나는 동료에게 닦달 아닌 닦달을 했다. 내 등쌀에 못 이긴 동료는 전화했고 어머니는 흔쾌히 수락하셨다. 팔순의 나이에도 먼 길을 혼자서, 그것도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과제 한 번 빼먹지 않은 열혈 모범생이셨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운동이 동네마다 펼쳐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들 하나 얻으려고 낳고, 낳고, 또 낳아 딸 넷을 낳고 보니, 그렇게 인자하신 시아버님은 화살보다 더 강한 날카로움으로 변심되셨다. 어느 날 시댁의 허락을 받아 친정에 갔다가 마당 앞에 핀 해당화 한 포기를 가져와 삽작 담 밑에 심었다. 잎이 피고 꽃이 피면 그리운 사람 만나보듯 들며 날며 보던 해당화. 그런데 시아버님이 딸만 낳는 며느리가 보기 싫어 죄 없는 해당화를 뿌리째 다 뽑아버리셨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가, 한 뿌리가 남아 그 이듬해 또 꽃을 피웠다. 시아버지는 다시 연장으로 모조리 그 씨를 지웠다. 나는 말도 못하고 왜 그리 슬프고 서러운지…. (중략) “아들이다!아들!” 끝까지 오기로 버텨온 난 해냈다. (중략) 십팔 년의 긴 기다림 끝에 그렇게 원하던 손주가 태어났는데… 보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시아버지와 해당화’ 중에서

책이 출간되던 날 나는 꽃바구니 하나를 보내드렸다. “줄줄이 딸 여섯을 낳았다고 시아버지께 구박받던 설움이, 한이 한꺼번에 풀린 것 같다. 나보다 더 고생했을 여섯 딸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이리 예쁜 꽃은 나 태어나고 처음 받아본다. 이거 받아도 되는 기가?”라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 했다. 7남매를 키우며 가슴에 켜켜이 쌓아놓았던 한이, 실타래처럼 풀리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 잘 전달됐던 모양이다.

잎과 꽃이 피면 그리운 사람 만나보듯 들며 날며 만날 수 있는 봄이 오고 있다. 이 책의 향기가 꼭 봄날의 향기 같다. 책을 출간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꼭 숨겨 두었던 자신들의 삶을 우리가 함께 보게 되기까지 그 많은 수고와 노력에 고마움을 전한다. 팔순의 7남매 어머님을 비롯, 다들 멋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 참 아름답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