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이 갑자기 급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마음과 몸이 모두 병들기 쉬운데 동의보감에도 탈영실정증(脫營失精症)으로 자세히 기록돼 있다. 탈영(脫營)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실정(失精)은 넉넉했던 재산을 갑자기 잃은 것을 뜻한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질병으로 따로 분류가 됐을까.

그림= 서상균 기자

동의보감 신문(神門) 편에 기재된 증상은 대략 이렇다. ‘몸이 갈수록 마르고 기운이 없으며, 오싹오싹하기도 하고 수시로 놀란다. 분노로 인해 간이 상하고, 과도한 생각으로 비위의 기능이 저하되며, 심한 경우 호흡기가 약화될 수도 있다. 이 때 승양순기탕(升陽順氣湯)을 처방한다’. 한의원을 찾는 환자 중에도 이런 분들이 적지 않다. 갑자기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거나, 사회적 지위가 추락한 후 건강이 나빠진 분들이다. 탈영실정증(脫營失精症)은 단언컨대 ‘비교’ 때문에 오는 마음의 병이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고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그 차이만큼 아픈 병이다. ‘비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괴롭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해방 이후 70년간 우리나라는 비교의 시대였다.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2가지밖에 없었다. 하나의 직선 위에 전 국민이 줄 서 있고 서로서로 비교하는 시대였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도 ‘죄송합니다. 국민 앞에 면목이 없습니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일상인 시절이었다. 성장의 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 비교란 사회가 부여한 익숙한 습관이다. 하지만 이젠, 성장기를 지나 성숙의 시대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해도 함께 축하하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실패는 최대한 감추려던 과거와 달리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실패를 소개하며 돈을 버는 시대다.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우주개발회사 ‘스페이스X’는 로켓발사에 실패한 영상을 자랑스럽게 업로드해두고 있다. 심지어 신나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수많은 실패 사례를 보여준다. 다른 회사와 비교하거나 대중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실패를 뽐낸다.

지금은 비교 때문에 괴로워할 시대가 아니다. 한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를 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실패의 슬픔에 빠져있지 말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시대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70세가 넘어서도 유니크한 인생항로를 발견해서 다음 날 아침이 기다려지는 인생이 진짜 성공이다.

동의보감의 승양순기탕은 원기를 돕고 가슴속 열을 내리며 식욕을 돋우는 처방이다. 처방 속 약재를 보면 환자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허준 선생의 마음이 보인다. 선생의 목표는 명료했다. ‘일단 집에서 나와 움직여라! 몸을 움직여 가슴 속 열을 배출하라! 후회나 걱정 등 일체의 생각을 접어두고 잘 먹어라!’가 탈영실정증 환자에게 해주고픈 허준 선생의 마음이었다. 이렇게 선생을 만나고 승양순기탕을 복용한 사람들은 서서히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모르파티(Amor Fati)라는 말을 좋아한다. 신나는 유행가로 알려져 있지만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도 운명이다. 그 운명에 저항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은 건강마저 잃겠지만 ‘그럴 수 있다’며 자신을 다독이고, 그 운명까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불행마저 기회로 바꾼다. 그저 댄스곡인 줄 알았던 아모르 파티의 가사 한 부분을 읊어본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