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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의 그림산책] 범 내려온다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2-02-08 19:47:3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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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 귀 찢어지고, 쇠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는 듯….”

‘호작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근 온 세상을 흔들 듯 울려 퍼진 노래 ‘범 내려온다’의 첫 구절이다. 판소리 수궁가 중의 한 대목을 현대화해서 부른 이 노래는 국경을 넘어 다른 세상에까지 널리 퍼져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이 되었다.

그동안 국악가요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 노래가 이렇게 대중에게 많은 호응을 받은 것은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금세기에 있을 법하지 않았던 느닷없는 코로나19 창궐에 속수무책이었던 나약한 인간의 신음처럼 서서히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더 이상 호랑이가 살 수 없는 도시의 빌딩 숲을 헤치며 무엇인가를 혼을 낼 기세로 득달같이 내려왔다.

호랑이가 노래 음률을 타고 춤을 추는 동안 미술계에도 호랑이 그림이 판을 쳤다. 특히 민화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주요 소재가 되었으며, 여러 장르의 작가와 판화가들의 작품에까지 많은 호랑이가 등장하였다. 한국 회화사에서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은 매우 특이한 위치에 있다. 조선시대 도화서를 중심으로 한 화원들의 정통화에서는 호랑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심사정 김홍도가 그렸다는 호랑이 그림이 유명하나 위작 논란이 있고, 이들 외에 다른 화원들이 그린 호랑이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회화 속 호랑이의 모습은 정통화보다는 민중 사이에서 유행한 민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민화 병풍의 대표적 소재인 ‘호렵도(虎獵圖)’에서 호랑이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고, 주로 세화(歲畵)로 그려지는 ‘호작도(虎鵲圖)’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일명 ‘까치 호랑이’라 불리는 호작도는 조선시대 민중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민간에서 흔히 있었던 ‘호환(虎患)’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변에서 자주 있는 호환을 막고 싶은 마음에 만들어진 상징성은 점차 확장되어 호랑이 못지않은 외적의 침입이나 역병의 엄습을 막고자 하는 마음을 반영하기도 했다.

민중은 위태로운 현실보다는 좀 더 나은 안정된 삶을 바랐다. 이러한 기복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 ‘호작도’라 할 수 있다. 호랑이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까치와 짝을 이루는 것도 나쁜 것은 막고 좋은 것만 받고 싶은 민중의 소박한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다. 입춘 날 입춘첩을 붙이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호작도’ 한 점을 걸며 역병이 사라졌다는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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