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입맛 도는 음식이 있다. 꼬들한 살코기에 은은한 불 향이 밴 매콤 칼칼한 코다리찜이다. 연한 시래기와 푹 익은 무가 얹히면 공깃밥 추가는 저절로 곁들여진다. 양팔을 걷고 양념을 입술에 묻힌 채 후후 매운 숨을 몰아가며 먹어야 하니 격식을 차릴 자리에서는 정할 메뉴가 못 된다. 그러니 코다리찜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이라면 제법 극친하다고 하겠다.

십 년 만에 연락이 닿은 미란 씨와 따뜻한 밥 한 끼 먹자는 약속을 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렵사리 찾은 변두리 식당은 숨은 맛집으로 알려진 코다리 전문점이었다. 놀랍게도 미란 씨가 석 달째 일하고 있는 곳이라 했다. 유난히 뭉툭한 손마디가 눈길을 잡는다. 흰머리 듬성한 야윈 모습에서는 시련의 세월이 겹쳐졌다.

다행히 얼굴빛은 청랑하게 맑았지만, 나는 그녀가 얼마나 악착같이 살아왔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인의 목욕탕 한켠에 세간을 들여놓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손, 손님 등을 밀다가 나와 마주치고는 겸연쩍게 웃던 눈, 그렇게 모은 돈으로 마련한 집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사연을 담은 저 삭아 내린 가슴. 그뿐인가, 방탕에 빠진 남편은 진즉 가족을 팽개친 상태였다. 미란 씨 앞에서는 알량한 내 아픔 따위는 내비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연락을 뚝 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화르르, 주방에서 이는 불쇼에 눈길이 꽂혔다. 밖에서 보아도 숨이 턱턱 막힐 듯한 열기 속에서 주방장이 팬에 불을 붙여 기름을 날렸다. 코다리에 불맛을 입히는 중이었다. 재바르고 눈썰미 깊은 미란 씨도 이제 조금은 불향 흉내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불의 맛을 배워가는 그녀의 팔뚝 여기저기에 불그레한 흉터가 남았다. 내 시선이 닿자 이미 심중에 덴 불 자국이 너덜거릴 텐데 이까짓 것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소매를 슬쩍 끌어 덮는다. 훈김을 풍기며 코다리찜이 접시에 담겨왔다. 몸뚱이가 동강 나지 않고 머리까지 미끈하게 통째로 졸여졌다. 내장을 빼고 네댓 마리씩 한 코에 꿰어 말린 어린 명태가 아니던가. 다행히 대가리가 붙었으니 무두태는 피했고, 물러지거나 딱딱하지도 않았으니 찐태나 깡태도 아니며, 떨어지거나 손상되는 일도 면하여 낙태나 파태라는 악명도 비켜났다. 물론 동태 백태 먹태 황태라는 돌림 항렬의 은덕은 입지 못했지만, 끝까지 덕장에서 버텨냈기에 코다리라는 이름 석 자를 얻었다. ‘명태’라는 노랫말에 나왔던 ‘이집트의 왕처럼 미라’가 된 코다리 네 마리가 요리상에 올려졌으니 물고기의 생으로도 이만하면 족할 일이다.

미란 씨가 내게 먼저 시식을 권한다. 핏줄을 나눈 자매처럼 애틋하게 지낸 날들을 돌이키는 동안 어느새 내 앞으로 가득 살을 발라놓았다. 이곳 코다리찜이 요샛말로 뇌살시키는 맛일 거라며 그녀가 조금 크게 웃는다. 나도 한 입 삼키며 죽여주는 맛이라고 추임새를 넣는데 갑자기 눈자위가 어릿하게 매워진다. 코다리찜을 할 때는 불맛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명태 살이 부서지지 않게 하는 거란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미란 씨는 자꾸 생선에 상처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처를 내는 것도 상처가 나는 것도 모두 슬픈 일이다. 숨었던 십 년 동안의 삶 역시 순탄치는 않았을 터. 풍문에 들려오던 소문들도 안타까운 일들뿐이었으니까.

묻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참기로 하였다. 저마다 감당해야 할 고뇌의 짐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어디 코 꿰인 삶이 코다리뿐일까. 청어나 꽁치의 눈을 꿰어 말린 과메기도 비슷한 처지이고, 엮거리 신세인 굴비는 꿰미를 지은 채 해풍을 맞거나 통보리 뒤주 속에 들앉아야 한다. 미란 씨의 삶이 비록 첫 코부터 잘못 꿰어지긴 했으나 아주 바닥으로 추락하지는 않았으니 실패했다고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

불맛의 진수를 파악하듯 매운 삶도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녀가 중얼거린다. “나는 이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화나지 않아요. 내가 잘못했으면 그 말이 맞는 것이고, 내게 잘못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렴, 생태와 북어의 중간쯤이 코다리인 것처럼 미란 씨의 궂은 삶도 이제는 꾸덕꾸덕 말라져 가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