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짜리 코뿔소가 달려오고 있다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코뿔소에 부딪히면 크게 다칠 것임도 안다. 그럼에도 모두가 코뿔소를 주목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잘못 대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결과, 문제 예방에 실패하게 된다. 이처럼 충분히 예상 가능하며 파급력이 크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요소를 ‘회색 코뿔소’라고 한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블랙 스완’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회색 코뿔소는 위기관리 전문가인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 대표가 2013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언급하며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누구나 회색 코뿔소를 이야기한다.
얼마전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경제·금융 전문가 간담회에서 “그동안 회색 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들이 현실화하고 있어 그야말로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해 하반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할 수 있는 회색 코뿔소와 같은 위험 요인들은 확실하고 선제적으로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국내 경제를 전망하는 열쇳말에 ‘차이나 리스크’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들어 Rhino(코뿔소)의 알파벳 ‘R’을 사용했다. 중국 부동산 버블, 그림자 금융, 지방정부 부채 등이 중국의 회색 코뿔소로 거론됐다.
그런데, 역대 최대 가계부채,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 미중 무역 분쟁이란 ‘고래싸움’에 낀 현실 등은 우리가 처음 맞닥뜨린 상황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었고 부동산 거품 문제는 당시에도,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미중 갈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회색 코뿔소는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옆에 도착해 있지 싶다.
코끼리가 방 안에 있으면 어떨까. 처음에는 답답하지만 어느 순간 그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나 문제가 보이지만 해결하려 들지 않는 것이 ‘방 안의 코끼리’다. 코로나19 사태는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블랙 스완’에 가깝다. 코로나19라는 변수와 별개로, 우리 경제에는 수년째 반복되는 악순환이 있다. 이를 단지 ‘뉴노멀’이란 말로 덮어버리면 ‘검은 코끼리’가 돼버리지 않을까. ‘블랙 스완’과 ‘방 안의 코끼리’를 합성한 검은 코끼리라는 용어는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도입했다. 모두 알고는 있으나 해결하려 나서지 않는 문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