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핵심 인력 유출 의혹이 일었던 현대글로벌서비스(지난해 11월 18일 자 1면 보도)가 사실상 핵심 인력 대부분을 수도권인 성남시 판교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애초 ‘본사 이전은 없고, 핵심 인력 유출도 최소화한다’는 입장은 없던 일로 치부되고 있다.
최근 만난 현대글로벌서비스 L 대표는 “우리는 국내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핵심 연구인력을 구할 수 없다”며 수도권행을 사실상 시인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판교로 가면 플랫폼 기업에 연구개발 인력을 뺏길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옮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덧붙였다. 내부적으로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심이 현실화된 것이다. 대신 그는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자회사를 설립해 지역인재 등 200여 명을 뽑겠다고 밝혔다. 핵심 연구인력은 수도권으로 빼가고 지역 영업 인력만 자회사 형태로 남기겠다는 의미다. 2019년 부산고용대상, 2020년 부산고용우수기업 등으로 선정된 기업이 결국 그동안 키워온 인재마저 수도권으로 데려간다는 결정은 지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2016년 12월 부산에 둥지를 틀 때만 해도 현대글로벌서비스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회사로, 설립 4년 만에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며 단숨에 부산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이 핵심 연구인력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로 집적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슬슬 바뀌기 시작했다. 본사 이전에 대한 지역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회사 측은 “본사 이전은 말도 안 되며 핵심 인력이 옮겨가는 것은 맞지만 규모도 정해지지 않았다. 수도권에 연구인력이 많아 굳이 부산에서 많은 인력을 빼갈 이유가 없다”고 반발했다. 이 말을 믿은 부산시도 지난달 박형준 시장이 주재하는 긴급 간담회를 개최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현대글로벌서비스 K 상무는 “연구개발 인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고, 박 시장은 “제가 백방으로 뛰면서 노력하고 있으니 부산에 안착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답하기도 했다.
회사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IT 전문인력의 ‘남방 한계선’이 경기도 용인 부근에 형성됐다는 말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을 위해 뛰어난 인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매출 1조 원대 회사로서 지역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지역 대학과 채용 연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찾을 수도 있었을텐데 부산을 떠나려고 급급하는 모습에서 실망만 남을 뿐이다.
반면 아직은 미약하지만 지역 생태계를 걱정하는 곳이 있어 희망을 가져본다. 가구업계 ‘공룡’인 한샘과 이케아 등과 당당히 맞서며 실력으로 경쟁하는 지역 대표 가구업체 ‘예홈’이 그 대상이다. 34년간 합판과 주방가구 개발에 매진한 허영식 대표는 부도어음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난해 직원 70명에 140억 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등 선전하면서 이제는 건설사 고위 임원이 찾아와 제품을 의뢰하는 업체로 변모시키고 있다. 허 대표는 “기술로는 어느 대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며 “지역 가구업체와 상생할 방안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13년간 일군 파워 반도체 생산업체를 2020년 부산으로 이전한 제엠제코도 기대가 크다. 최윤화 대표는 “미래에 주축이 될 전기차에도 파워 반도체가 필요해 앞으로 파워 반도체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부산을 중심으로 파워 반도체 클러스터를 형성해 지역과 함께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부천에 있던 동종업계 기업을 부산으로 유치하는 데도 적극 나서는 등 진심을 담은 모습이다.
시는 지난해 국내외 글로벌기업 23개사를 유치하고 8400여 명을 고용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인 3조6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투자유치도 옥석을 가려서 할 때가 됐다. ‘무늬만 지역 업체’보다는 지역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업체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