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영웅’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제목의 기사가 수없이 쏟아진다. 감염병 대응 3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영웅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이유는 영웅이라는 말이 응원의 의미보다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감염병 대응 역사에 기록해야 할 것은 영웅담이 아닌 참회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2022년엔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직업은 때론 듣고 싶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연들을 만나게 해준다. 지난 2년간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부산의료원에 근무하는 한 노동자는 단지 부산의료원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민들에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노동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겨줄 수 없겠느냐는 연락도 받았다고 한다. 요양병원 집단감염으로 감염병 치료뿐만 아니라 간병도 책임졌으며, 이주노동자 확진으로 통역의 어려움도 겪었다. 심지어 과로로 탈진하는 경험도, 폭행을 당하는 일도 겪어왔다고 한다.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일한다는 하소연 속에 담긴 그들의 삶은 우리가 그토록 응원해왔던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알려졌듯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중에서도 부산은 전국 평균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공공병원이 그 존재만으로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서 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충분히 잘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이 있느냐의 문제, 즉 인력과 장비,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고 있어야 민간병원과는 다른 공공병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년 11월 부산시가 부산의료원의 2022년도 예산 삭감을 시도했다가 시의회의 조정이 있었던 사건을 빗대어 보자면 부산은 공공의료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공공병원의 역할을 수행할 충분한 기반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의 시정이 공공의료를 언제든지 축소할 수 있고, 후퇴시킬 수 있다는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작년 보건의료노동조합이 파업을 예고하며 했던 “10%밖에 안되는 공공병원에서 80%의 코로나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는 말은 지금의 감염병 대응의 주소를 보여준다. 이 내용은 공공병원을 늘려야 한다, 민간의료기관도 감염병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조금 깊게 들어가 보면 과도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누군가의 삶이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말하던 영웅들, 보건소와 부산의료원에서 감염병과 싸우고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삶이 바로 그렇다.
부산의료원만의 사연이 아닐 것이다. 확진자 80%의 치료를 맡은 전국의 공공병원 노동자들이 그럴 것이고, 각 구·군의 보건소와 감염병관리지원단 등 감염병 대응 일선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이 그럴 것이다. 공공병원을 짓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제 보건소와 부산의료원에서 삶이 망가진 이들을 구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공공병원 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의료체계를 개혁하는 일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검사에서부터 치료의 영역까지 이제는 민간과 공공의 구분 없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더 정확히는 민간을 동원해서 감염병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감염병 추이가 완화되고 나면 또 괜찮다고 할 것인가? 다시 확산되면 두 번은 괜찮다고 할 것인가? 언제까지 고무줄 방역정책에 공공병원만, 공공보건의료 현장의 노동자들만 희생되어야 하는가? 정부와 부산시에 묻고 싶다. 이제는 영웅이라는 허울뿐인 말로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키는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감염병 대응 역사에 남겨야 할 것은 영웅담이 아니라 참회록이다.
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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