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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작곡가 이상근, 그를 몰라봤다 /오광수

20세기 한국 음악계 대표, 부산은 50년 가까운 ‘일터’

예술인의 자료 조사·연구, 아카이브센터 설립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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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문화부에서 수습기자 딱지를 갓 떼어낸 초보 기자 시절이다. 1992년 어느 날 부장이 불렀다. 심부름이라고 했다. ‘그’가 작곡한 국제신문 사가(社歌)의 악보를 받아오라고 했다. 사가의 노랫말은 부장이 썼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노 교수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성악을 전공하는 제자들과 함께 국제신문 사가를 들려줬다. 국제신문에서 가장 먼저 사가를 ‘영접’했다. ‘어라? 따라 부르기 조금 어렵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제신문 강당에 모인 전체 임직원 앞에서 직접 지휘하며 몇 번씩 되풀이해 사가를 부르면서 연습시켰다. 국제신문 임직원에게 더욱 힘차게 부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를 제대로 몰라봤다. 음대 교수로 재직했던 작곡가인 줄만 알았다. ‘그’는 작곡가 이상근(1922∼2000)이다. ‘영남 음악계의 파수꾼’을 자처했고 그렇게 불렸다. 이상근을 몰라봤다.

이상근은 20세기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인물. 가곡과 합창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빼어난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다. 그는 사려 깊은 완벽주의자이면서도 자애로운 교육자였다. 여러 매체에 음악비평 수필 공론 등을 발표한 문필가이기도 했다. 예향 진주에서 태어난 이상근의 활동 무대는 부산을 비롯해 경남 마산과 대구 등지다. 그는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던 부친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했다. 고교 시절이던 18세 때 첫 습작으로 가곡 ‘나의 사랑은’을 지었다. 1946년 마산여중 음악교사로 재직하면서 자작곡으로 구성한 우리말 교재를 편찬해 가르쳤다. 1948년 제2회 문교부 중등학교 음악교재용 작곡모집에 한국의 정취를 담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선정됐다. 한국전쟁 때 마산으로 옮긴 이상근은 마산여고 음악교사로 일하던 중 전시작곡가협회에서 활동하며 서울 음악계와 교류했다. 이 무렵 평소 교분이 있던 유치환의 시집 ‘보병과 더불어’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제목의 칸타타 작품을 작곡했다. ‘보병과 더불어’의 악보는 한국전쟁기에 분실됐으나, 54년 만인 2006년 찾게 됐고 지난해 국가등록문화재 제791호로 등재됐다.

이상근은 1953년 윤이상(1917∼1995)의 추천으로 부산고교 음악교사가 되면서 일터를 부산으로 옮겼다. 1959년 미국 테네시주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현 밴더빌트대학교) 연수를 통해 현대음악의 흐름과 기법을 익혔다. 이는 이상근에게 각별한 계기가 된다. 부산교대와 부산대 사범대학을 거쳐 1985년 부산대 예술대학 교수가 됐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인 ‘부산성 사람들’을 지어 1986년 무대에 올렸다. ‘부산성 사람들’은 부산 최초의 창작 오페라였고, 제작과 출연 등 모든 단계가 부산 사람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 이상근에게 부산은 삶터이자 평생 일터였다. 경성대 김원명 교수는 논문에서 “이제 이상근에 버금가는 음악인이 언제 다시 부산에 나타날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이 이상근을 가졌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행운”이라고 밝혔다.

이상근은 부산문화재단의 F1963 기획전시 ‘부산展’의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展’ 섹션에서도 만날 수 있다. 지난 20일 F1963 석천홀에서 첫 테이프를 끊은 부산展은 다음 달 12일까지 이어진다. 부산展의 주제는 ‘부산의 문화적 자원을 발견하고 기록해 온 시간을 공유하다’.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展’ 섹션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역 문화예술인의 아카이빙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지역 문화예술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긴 예술인을 선정, 삶과 문화예술활동 자료를 수집·연구한 결과물이다. 대상은 음악과 연극을 바탕으로 ‘예술구국’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먼구름’ 한형석(1910∼1996), 지난해 선정한 윤정규(소설가·1937∼2002), 허영길(연극연출가·1940∼2018) 등 2명, 올해 선정한 작곡가 이상근과 허만하 시인(1932년생), 무용가 황무봉(1930∼1995) 등 3명이다.

이런 자리를 보면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가칭 ‘부산 문화예술인 아카이브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나고, 지역을 가꾸고 살찌웠던 문화예술인의 각종 자료를 체계적으로 발굴해 관리·보존하고 이를 연구자들에게도 제공하는 그런 곳 말이다. 아카이브센터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의 1차 자료, 예를 들면 당시 신문 스크랩 악보 공연 팸플릿 사진과 영상 등을 일목요연하게 접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처럼…. 물론 부산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예술 아카이브’(기본DB/권역별 문화지도/시대별 부산문화/인물 스페셜/부산예술인 아카이빙)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쉬운 대목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아카이브센터 설립을 위한 힘찬 행보를 기대한다.

편집국 부국장·걷고싶은 부산·부산스토리텔링 협의회 상임이사 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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