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준비로 분주한 추석 아침이었다. 벨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경찰 2명과 할머니 한 분이 서있었다. 경찰 말로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그것도 다른 날도 아닌 추석에 뭐, 이런 해괴한 일이 다 있나 싶었다. 경찰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할머니는 겁에 질린 듯 불안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짜고짜 싹싹 빌기 까지 했다. 그제야, 3주 전 옆집으로 이사 온 1002호 할머니라는 걸 알았다.“할머니 때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요, 매일같이 복도를 배회하고 다니시면 어떡해요,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 있겠냐고요?” 벼르고 있던 말을 쏟아냈다. 심장은 쉴 새 없이 방망이이질을 해댔고, 목소리는 떨렸다. 할머니만큼이나 나도 겁을 먹었고 불안했다.‘제발 그만 좀 하라고요.’되레 내가 싹싹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찰은 앞뒤 잘라먹은, 맥락 없는 내 말을 그나마 이해한 모양이었다. 더는 괴롭히지 않도록 할머니께 당부를 하겠노라 약속했다.

1002호 할머니의 만행은 이사 온 첫날부터 시작됐다. 할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 벨을 눌렀다. 매일 같이 복도를 배회 했으며 나와 마주칠 때면 손을 싹싹 빌며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혼한 전 남편이 자신을 찾아온다며, 남편을 만나게 되면 신고를 해달라고. 왜 하필 나여야만 했을까, 그것도 모자라 어쩌다가 신고까지 당하게 됐을까, 머릿속이 블랙홀 같다. 가스 점검 차 1002호를 찾아온 남자가 할머니의 전 남편으로 둔갑하는 순간,(할머니의 상상이었다) 그 남자를 본 사람이 나였으므로, 나는 유일한 목격자가 돼 버렸던 것이다.

내 일상에도 금이 갔다. 매스컴에서만 봤던 일들이 일어났다. 할머니가 벨을 누를 때면 숨 죽인 채 집에 없는 척 했다. 출근을 할 때면 할머니가 복도를 배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인터폰으로 확인을 한 뒤 나갔다. 녀석(강아지)과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할머니를 만날까봐 쓸데없이 아파트 주차장을 어슬렁거렸다. “천사(1004호) 아가씨, 얼른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하는교?” 경비 아저씨 눈치까지 살펴야 했다.

‘이상한 할망구’같으니라고.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편했고, 불안했고 짜증스러웠다. 할머니에게 더 야박하게 굴고야 만다. 같은 이웃으로 너무 했나 싶다가도, 요즘 같이 위험한 세상에 내 안위를 따지는 것이 먼저이지 싶었다. 그 뒤로도 집에 있던 통장이 없어졌다는 둥, 방 안에 CCTV 설치며 문 잠금장치를 한다는 둥 경찰이며 열쇠공이 왔다갔다, 시끄러웠다.

“좀머씨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왜 나와 다른 누군가를 판단하려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설 좀머씨에 대해 쓴 누군가의 칼럼이 떠오른다. 좀머씨의 몇 가지 기이한 행동들도 함께 기억이 난다. 텅 빈 배낭을 짊어지고 이상한 호두나무 지팡이를 쥔 채, 쫓기듯 이 마을, 저 마을을 걸어 다니고, 우박이 내리는 날에도 걷고, 숲으로 와서 도시락을 먹어치우고, 끝내는 호수로 들어 가버리는 좀머씨 말이다. 나는 그런 좀머씨가 이해됐다. 할머니를 좀머씨와 빗대는 건 초점이 어긋난 렌즈처럼 핀트(pinto)가 전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좀머씨를 이해했다면 1002호 옆집 할머니도 이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가는 과정만큼이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옆집 할머니는 그냥 그런 사람이려니 여긴다면 너무 비겁한 회피일까, 내 마음부터 편하고 보자는 술수일까. 여전히 나는 할머니를 피해 다니고, 할머니 집을 흘끔거리고, 할머니가 벨을 누를까, 노심초사 한다.

현대는 바쁘고 자기중심적인 사회다. 그럼에도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편견 없이 이웃으로 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더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불편한 이웃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