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우리나라의 한 방송사가 ‘맥가이버’라는 미국 드라마를 방영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 때 경쟁사는 ‘전격 Z작전’이라는 미국 드라마로 맞불을 놓았다. 둘 다 TV를 보는 이들을 확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많았길래 방영 시간을 학수고대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맥가이버에서는 주인공이 총이나 칼 같은 무기 대신 주변의 물건을 적절하게 이용해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격 Z 작전이 더 흥미로웠다. 이 드라마에서는 ‘키트’라는 최첨단 자동차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요구하는 바를 척척 알아들은 뒤 그와 힘을 합쳐 통쾌하게 악당을 물리친다. 돌이켜 보면 키트는 지금 세계 각국의 선도 기업이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전형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쩌면 과거에 나왔던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이 현재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었다는 일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전격 Z작전은 30여 년전에 종영됐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최첨단 자동차는 이제 상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은 현재 세계 업계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가 됐다. 미국과 독일 등 자동차 생산 강국은 일찍부터 시장 선점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들 국가의 기업은 첨단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해외업계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 규모가 2040년에는 9000억 달러(한화 1071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 못지 않게 자율운항 선박도 세계 각국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조타수나 항해사 없이 배를 운항하자는 게 최종 목표다. 소규모 무인 선박은 이미 개발됐다. 노르웨이나 미국 등은 원격조정 기술 상용화로 원양 선박을 완전 무인화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 66조 원대였던 세계 자율운항 선박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180조 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자동차공학회는 자율주행 자동차로 가기 위한 과정을 ▷無자율주행 ▷운전자 지원 ▷부분 자동화 ▷조건부 자동화 ▷고도 자동화 ▷완전 자동화 둥 6단계로 구분해 놓고 있다. 이 중 조건부 자동화부터 자율주행차로 정의한다. 자율운항 선박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지침을 보면 선원이 원격제어를 하는 수준이 2단계다. 3단계는 최소 인원 승선과 기관 자동화 등의 조건이 충족된 상태, 최고 등급인 4단계는 완전무인 자율운항을 의미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자율주행 자동차 및 선박 개발 기술도 일정 수준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은 현재 3단계 기술을 보유 중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이를 4단계까지 끌어올린다는 일정을 세워 두고 있다. 자율주행 선박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목표는 2025년까지 대양 항해 분야 3단계, 연안 항해 분야 2단계 진입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 개발 상태와 해외 자동차 및 조선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고려하면 한국이 이 분야에서 뒤처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투자나 인력 규모가 타국에 비해 크게 뒤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 과다한 규제가 업계의 자율주행 기술개발 및 상용화에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다. 관련 시설 건립 및 연구를 위한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최근 이 같은 의견을 수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3일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 창립식을 열었다. 이 단체는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앞으로 협회는 정책 및 규제개선 과제 발굴·건의, 기업 간 협업사업 모색, 국제 네트워크 구축 등의 일을 하게 된다. 정부도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한편 필요한 제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가기로 했다. 해수부는 지난 14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때 ‘자율운항선박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을 보고했다. 여기에는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촉진과 조기 상용화를 위해 2030년까지 추진할 주요 과제가 담겼다.
미래 먹거리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계획 수립 만으로 모든 게 이뤄질 수는 없다. 앞서 나가려면 그 만큼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율주행 자동차·선박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빈 말이 돼서는 안된다. 그럴싸한 정책 제시가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 끝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봐왔기에 던지는 바람이다.
세종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