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윤이후의 감옥 생활 /강명관

  •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   입력 : 2021-10-20 19:54:49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윤선도의 손자 윤이후가 함평현감으로 있을 때 대동저치미(大同儲置米)를 유용한 죄로 서울의 의금부 감옥에 갇힌 것은 1693년 10월 10일이었다. 실제 유용한 일이 없었으므로 억울했지만, 어쨌건 ‘입건’이 되었던 것이다. 흥서·종서·두서 등 세 아들은 금오문 밖 의막(依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이후는 피의자로 잡혀온 것이니, 감방에 갇혀 홀로 있어야 마땅했겠지만, 사정은 달랐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줄을 이었던 것이다. 먼저 의금부에 근무하고 있던 도사(都事) 정행만·박경승·권성중과 지의금부사 정유악과 유하익이 심부름꾼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양주목사 이형상도 문 밖에 와서 문안했다.

11일 심리가 시작되었고 결과는 곧 왕에게 보고되었다. 심리 후 익산군수 권혁을 비롯한 군수 병사(兵使) 주부 진사 생원 등 모두 열일곱 사람이 세 아들이 머무르고 있는 의막을 찾아가서 안부를 물었다. 영암군수 권찬, 봉사(奉事) 권찬, 호조참판 이봉징, 병조참판 권해, 공조참판 김빈, 감사(監司) 이운징, 판결사 배정휘는 직접 올 형편이 못 되었는지 사람을 따로 보내 위문하였다. 요즘으로 치자면 차관 3명과 도지사가 포함된 호사스런 위문단이었다. 그런가 하면 훈련대장 이의징은 심부름꾼을 보내 안부를 묻고 장작 50개, 숯 5두(斗)를 보냈다. 원정(原情, 전후 사정을 호소하는 문서)을 작할 때는 이형상이 귀중한 조언을 해 주었다.

조정에 포진해 있는, 힘 있는 조력자들의 설계에 따라 실제 심문은 형벌을 가하는 일 없이 이루어졌다. 아니, 제대로 된 심문도 없었다. 윤이후는 아무 일없이, 출옥할 예정이었다. 출옥이 늦어진 것은, 의금부의 최고책임자인 판의금부사가 어떤 인사의 잔치에 참석하고 이어 사표를 냈기 때문이었다. 윤이후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12일에는 경기 관찰사가 아침 일찍 의막을 찾아와 안부를 물었고, 사서(司書) 홍만기, 정언(正言) 이상훈이 편지를 보내어 역시 안부를 물었다. 감역(監役) 송기창, 전적(典籍) 김태정은 직접 찾아왔고, 승지 심중량, 병조참판 권해, 예조판서 류명현은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이날 찾아오거나 사람을 보내거나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위로한 사람은 모두 19명이었다. 13일에는 16명이 윤이후를 찾거나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었는데, 거의 다 벼슬아치들이었고, 그 중에는 멀리 경상도 예천에서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14일부터 21일까지 20명 안팎의 벼슬아치와 그 친지들이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감옥에 갇혀 있다 뿐이지 그의 사교생활은 여전히 아니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의 죄에 대해 21일 조율(照律)이 있었다. ‘무단으로 함부로 대동저치미(大同儲置米)를 쓴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곡식을 유용한 것은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의 곡식을 유용한 죄가 있다는 것이었다. 윤이후는 이마저도 억울했지만, 이 조율은 사실상 그를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24일 최종 선고가 있었다. 국가의 곡식을 유용한 죄는 삼천리 유배에 처하는 것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고신(告身, 職牒)만 빼앗고 나머지는 모두 용서한다는 것이었다. 그날로 감옥에서 나온 윤이후는 11월 1일 한강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닷새 동안 위로 차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기에 바빴다.

윤이후로서는 보름 동안 옥에 갇힌 것은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가 옥에 갇혔을 때 고위관료를 비롯한 백수십 명이 안부를 묻기 위해 직접 찾아오거나 사람과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그만이 누린 특권이었다. 보통의 백성이 사소한 절도를 범해(아니, 의심만으로도) 옥에 갇히면, 모진 고문 끝에 시신이 되거나 불구의 몸이 되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윤이후의 특권이 거대한 전장(田莊)의 소유, 벼슬살이, 고급 사족들끼리 혼인, 사교를 통해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 특권은, 그것을 누리던 사람들에게는 워낙 자연스러운 것이라,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일개 서민에 불과하지만, 그런 특권층을 흠모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3. 3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8. 8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9. 9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0. 10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3. 3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4. 4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5. 5내년 주목할 세계 여행지 톱10에 부산… 국내 유일
  6. 6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7. 7"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8. 8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9. 9“사업비 턱없이 부족”… BS한양, 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 탈퇴 의사 밝혀
  10. 10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7. 7“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8. 8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9. 9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10. 10양산시, 종합장사시설 후보지 오룡마을 선정…2030년 말 준공 목표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주당 ‘13.7시간’ 고용
발가벗겨진 사우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미래대응기금, 지방재정 기반 흔들어선 안 된다
단일종목 ETF 졸속 심사 인정…책임 소재 밝혀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문화예술의 시대
다민족 사회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