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권의 가계 대출 조이기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은행마다 신규 대출을 제한하거나 요건을 강화하는 바람에 이사를 앞둔 주택 실수요자들의 돈줄이 막혀버린 것이다. 경남 양산 사송신도시 아파트처럼 입주 예정자들이 제1금융권에서 중도금이나 잔금을 맞추지 못해 새마을금고나 저축은행같은 제2금융권을 찾는가 하면 이도저도 안돼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전세 자금이 없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는 호소도 적지 않다. 지금같은 대출 규제가 지속되면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대출 난민’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가계 대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 자체는 나무랄 수 없다. 이미 가계 대출은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늘어난 상태다. 가뜩이나 금리 인상기인데다 미국의 자산매입 축소, 해외 금융 불안 등 국내외 사정이 심상치 않아 우리 경제의 잠재적 위협 요소에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피해가 주로 무주택자나 실수요자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현 상황은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가계 대출을 시중은행 전체 총량으로 묶는 바람에 한도를 초과한 한 곳은 대출을 이미 중단했고 나머지도 도미노 중단이 임박했다.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리면 사금융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것도 안되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개인별 맞춤 대응이 안된 결과다.

대출 발생이나 상환이 개인의 영역이긴 해도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이 최근 들어 급증한 건 모두 저금리 속 부동산 폭등 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집값과 전셋값은 오를대로 올랐다. 무주택자들은 불안감에 ‘영끌’ 대출이라도 받아 너도나도 집 매수에 나섰고, 다른 자산 가치의 상대적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올인했다. 이런 불안정한 사회 구조를 만든 바탕에 정부가 있다. 다주택자나 고액 자산가, 현금 부자들이 작전 세력으로 참여해 과다 수익을 취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밖에선 총량으로 누르고 안에선 상환 능력을 따지는 방식으로 싸워야 할 대상은 그런 사람들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실수요자와 서민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부산 경남을 포함해 전국에서 올 연말까지 아파트 신규 입주 예정자는 5만7000여 가구이다. 전세 수요까지 합하면 더 많을 것이다. 이들 전부 대출이 막힌 건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달 중순께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계 대출 추가 상승을 가급적 누르는 기조를 유지는 하되 보다 입체적이고 세밀한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 대출 억제가 기계적이고 강압적이면 타격을 입는 건 투기 세력이 아니라 서민과 취약계층이다. 적어도 부동산 실수요자들에겐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론 집값도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