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가능성에 대한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 21일(미국시간) 제76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북한이 적극적으로 화답하면서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국내외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으로, 대남·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연속 담화가 주목된다. 김 부부장은 24일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불과 하루 뒤인 25일 담화에서는 종전선언은 물론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종전선언 논의를 마중물 삼아 대화 재개를 통한 교착상태 해소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현안 관련 의견이 늘 엇갈리기 일쑤이던 남북 관계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번처럼 ‘맞장구’가 쳐진 국면은 흔치 않았다. 남북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논의를 진전시켜 종전선언과 평화정착이라는 ‘옥동자’를 낳는 기회로 삼자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선 우선 북 측 담화 속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김 부부장은 첫날 ‘상호 존중·적대시 정책과 불공평한 이중기준 철회’ 등의 조건을 내걸었고, 이튿날 담화에서도 유사한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조건과 동시에 “북과 남이 서로를 트집 잡고 설전하며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대목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건’에 소득 없이 매달리기 보다는 신속한 대화 의지가 더 강하다고 읽히는 부분이다.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까지 먼저 밝힐 정도로 북 측의 대화 의지가 강하지만, 여전히 적지않은 난관이 있다. 최대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보는 북미간 현실 인식의 차이를 어떻게 좁히느냐이다. 미 국방부는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곧바로 “논의는 항상 열려있다”면서도 “최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최근 잇따랐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분명히 하고 비핵화를 위한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와의 직접 대화 또는 남 측의 중재를 통한 대북제재 해제를 원하는 북 측의 바람과 간극이 크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우선은 북미 인식 차를 좁혀 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과제지만, 핵심적인 열쇠는 북한 손에 달렸다. “트집과 설전으로 시간낭비할 필요 없다”고 한 담화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체면’보다는 ‘항구적 평화와 경제 회복’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택할 수 있는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수순은 조건 철회와 동시에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간 대화를 통한 인도적 수준의 제재 해제, 이에 따른 낮은 단계의 가시적인 비핵화 상응 조치다. 우리 정부 역시 미·중·러 등 주변국 정부와 긴밀히 논의해 북한의 매끄러운 퇴로를 여는 데 촌각을 다퉈야 한다. 남은 임기 8개월, 결코 길지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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