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를 둔 일본의 고등학교는 3940곳이다. 그런데 최근 전교생 131명에 불과한 한국계 학교 교토국제고가 일본야구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갑자원 야구대회의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그 결과만도 감동이었는데 대부분이 교포 3세인 그 아이들이 마운드에서 우렁차게 불렀던 한국어 교가가 나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교토국제고의 교가 1절은‘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날 꿈자리’로 시작한다. 4절에는‘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는 구절도 있다. 모진 세월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버리지 않고 자식 대까지 이어온 400만 재일교포들의 강인한 민족적 저력에 초라한 애국심으로 사는 나를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재일교포들은 광복 이후 일본인들과 동일하게 세금을 내면서도 76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취업 학업 등에서 민족적 차별과 불이익을 받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차별이 교포 2세와 3세에게 슬픈 유산으로 물려지는 상황이니, 한국인으로 태어난 처지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일본인들의 인식이나 사회적 구조로 볼 때 차별 문제가 해소될 전망은 거의 없다. 일본인들과의 동일한 권리와 대우를 받으려면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차별과 멸시를 이기고 일본 갑자원의 야구장에서 본선에 진출해 한국어 교가를 자랑스럽게 부르고 있는 교포 3세들의 의젓한 모습에서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95년 일본 레코드대상을 수상하고 미국카네기홀 초청공연까지 했던 아라이 에이치라는 일본 가수가 있다. 스스로 코리안 저패니스라 부르는 아라이 에이치는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아버지와 재일 조선인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일본인이다. 조센징이라는 멸시와 천대 속에서 자란 아라이 에이치는 가수로 성공한 후, 1995년 일본어로 된 ‘청하로 가는 길’이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그가 경북 포항시 청하면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해 그 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가 멸시받던 어린 시절, 고생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던 청년 시절, 그리고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갔던 부산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는 뱃길로 끝이 난다. 첫 소절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로 시작해 끝 소절‘아버지의 나라가 멀어져 간다’로 마무리한다. 이 노래는 차라리 한풀이에 가깝다. 슬픈 근대사의 희생물이 돼 국가가 지켜주지 못했고, 나라가 책임져 주지 못해 한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억울한 삶과 그 가족이 걸어온 슬픈 여정이 고스란히 담긴 대서사시다. 아리랑과 블루스 그리고 재즈가 어우러져 48절에 길이만 30분에 이른다.

살다 보면 그리운 감정에 북받쳐 울컥할 때가 있다. 사람마다 처지와 가족사에 따라 고향과 부모에 대한 애잔한 감정이 차이는 있겠지만, 고향과 부모는 명절을 앞둔 우리를 운명과 숙명의 틀 속에서 또 한 번 생각한다. 다가오는 추석은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교토고 야구부의 도전과 용기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을 되새기면 어떨까

시인·문화컨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