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세계 대중음악사에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이 일어났으니,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역은 대한민국이 배출한 7인조 그룹 방탄소년단(BTS). BTS의 ‘Butter(버터)’라는 곡은 미국 빌보드 ‘핫 100 리스트’ 주간 집계에서 7주 연속 1위를 하다가 다른 곡에 정상을 내준 뒤 1주일 만에 다시 탈환했다. 그런데 직전 주의 1위 곡 역시 그들의 노래인 ‘Permission to Dance(퍼미션 투 댄스)’였다. BTS는 노래만 바꿔가며 9주 연속 정상을 지켰다는 이야기다. 빌보드 사상 9주 연속 1위를 기록한 가수는 있었지만, 한 가수가 2주 연속으로 자신의 노래로 자신의 노래를 끌어내리고 정상에 오른 경우는 BTS가 처음이었다. 세계 대중음악사는 새로 쓰여졌고, BTS는 역사가 됐다.
BTS에 대한 찬사는 아무리 쏟아내도지나치지 않다. 그런 한편으로 아시아권 가수인 BTS가 인종 차별의 벽을 넘어 대성공을 거둔 것이 과연 그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돌이켜보니 “그때 그일 때문이었어”라고 깨닫게 되는 어떤 결정적 계기 같은 것이 없었을까.
필자는 그 순간을 꼭 40년 전인 1981년 8월 1일(미국시간)에 일어난 이 사건에서 꼽고 싶다. 뮤직비디오 전문 유료채널 ‘MTV’의 개국. 워너 브라더스의 자회사 워너 케이블 소속 영상매체 담당자인 28세 청년 로버트 피트먼이 주도한 MTV는 이른바 ‘뮤비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MTV의 첫 뮤직비디오 클립이 영국 출신 그룹 버글스(Buggles)의 ‘비디오 킬드 라디오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던 점만 봐도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MTV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전망을 불식시키고 불과 3년도 안돼 미국 내 2500만 가구의 유료 시청자를 확보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다. 또 10여 년 만에 세계 각국에 자회사를 두었고, 지구촌의 맥주홀과 카페, 펍 레스토랑의 TV모니터를 MTV로 ‘채널 고정’시켜 버린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대 전환이었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MTV도 초기엔 미국 내 주요 모순에 대해 외면했다가 위기를 겪은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MTV는 초기 1년여 동안 기존 영미 음악계의 타성에 젖어 백인 가수의 음악만 내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인종 장벽을 쌓는 MTV를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 와중에 결국 MTV가 인종 장벽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없앤 계기가 바로 1982년 11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앨범 발매다. 이 앨범 속 ‘빌리진(Billie Jean)’과 ‘빗 잇(Beat it)’ 같은 명곡은 귀로 듣는 오디오적 요소 말고도 ‘문 워크(Moon Walk)’라고 불리는 댄스 동작을 직접 보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MTV는 1983년부터 흑인 가수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방송했고 가수와의 ‘윈-윈’에 성공했다. 이후 MTV는 세계 음반산업과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전복시킨 플랫폼이 된다. 인터넷과 유튜브가 탄생하기 훨씬 전 일이다.
결국 40년 전의 일이 세월이 흐르면서 기술적 진보, 의식의 전환 등을 겪은 끝에 오늘날 BTS의 역사가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자리한다. 바로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즉 메시지다. MTV 탄생을 계기로 대세가 된 ‘비주얼 퍼포먼스’만이 BTS가 가진 매력의 전부가 아니었다. 화해 소통 공감 희망 등 밝고 평화로운 메시지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위안과 치유의 감정을 선사한 것이야말로 진짜 매력이었다. 시대를 통찰하고, 동시대인들이 음악가에게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응답한 결과였던 것이다.
하물며 대중음악의 역사도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발전해 왔는데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역사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 무게감이 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지우기 힘들다. 대부분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과 공약에서 역사에 대한 통찰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를 규정할 주요 모순에 대한 해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함을 모르지 않으나, 대한민국의 미래 리더십이 여기에만 집착하고 있는 모습은 허망하다. 부동산 문제, 소득 배분 문제, 일자리 문제가 소중한 만큼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성별 세대별 직업별 지역별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 또한 중요하다. 한반도 구성원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분단과 평화 정착에 대한 방법론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 또한 실망스러운 일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역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무게감을 제대로 감당할 만한 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고 또 아쉬운 일이다.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