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엘시티 실소유주였던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부산의 전현직 공직자들이 무더기로 재판을 받게 됐다. 부산지검은 최근 전현직 부산시 고위 공무원 등 9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8명은 기소유예했다. 이들이 이 회장측으로부터 받은 명절 선물과 골프 접대 등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같은 사안에 대해 2017년 수사 때는 단순 선물이라며 관련자 명단을 기관 통보만 하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선물이나 접대의 횟수나 액수는 달라진 게 없지만 그때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검찰의 뒷북 기소에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4년 전 검찰의 처벌 수위와 범위가 지나치게 낮았다는 지역 시민단체의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에 따라 소집된 검찰시민위원회의 기소 의견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공무원과 업자의 물질적인 결탁을 용인해야 한다거나 시민위원회 의사를 무시해야 한다는 게 결코 아니다. 하지만 범죄 행위를 수사하고 단죄하는 책임은 엄연히 검찰에 있다. 죄가 되는지의 여부를 위원회의 판단에만 맡긴다면 검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원회 의견이 필요하다면 4년 전에 물었어야 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검찰이 기소를 하면서도 여전히 입건 기준에는 못 미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볼 땐 죄가 안 되지만 위원회가 기소하라고 하니 기소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번에 추가로 재판에 넘겨진 9명이 최종적으로 유죄를 받으면 과거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잘못이었다는 증거가 되고 무죄를 받으면 이번 기소가 무리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검찰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검찰은 비판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외부 분석대로 검찰의 이번 처분이 엘시티 부실 수사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는 공수처를 의식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조직의 보위 때문에 형사적 판단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년 전 이 정권이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일 때 모든 국민이 박수를 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 목소리가 묻힌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검찰 때문이다. 검찰이 쥔 칼은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가혹하고 누군가에겐 한없이 무뎠다. 이런 불신들이 쌓이고 쌓여 검찰을 보는 국민의 시각이 만들어졌다. 잘못된 수사는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하지만 동일사안에 대한 판단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누구도 검찰의 수사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권한이 축소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검찰은 이 나라에서 가장 힘이 센 조직이다. 그 힘을 엄중한 원칙에 따라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견제하는데 써야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엘시티 사건은 벌써 몇년째 지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하다가 마는 듯한 수사로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이 참에 공직사회에 만연한 비리 관행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