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 보니 갈맷길이 벌써 열두 살이다. 부산시가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걷고 싶은 도시’를 선포한 게 2009년 6월 7일이었다. 갈맷길은 ‘그린워킹(Green Walking)’을 표방한다. 그래서 갈맷길은 초록이다. 갈맷길은 부산의 새이자 상징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이다. ‘짙은 초록색’을 뜻하는 우리말 ‘갈매’와 ‘길’을 합친 것이기도 하다. 갈맷길은 산과 강, 바다, 온천의 사포지향을 품고 있다. 산길을 걷다 보면 강을 만나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가 나온다.

갈맷길을 걸은 뒤 지친 몸을 달랠 온천도 있다.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이다. 동래온천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씌어 있듯 옛날 옛적부터 있었다. 통일신라 시대인 682년(신문왕 2년) 충원공이라는 재상이 동래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사포지향의 갈맷길은 현재 9개 코스 21개 구간에 총연장 278.8㎞이다.

갈맷길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사랑받았다는 소식도 지난 3월 전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2020 걷기여행 실태조사’ 결과다. 지난해 12월 전국의 만 15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간 방문한 걷기여행길’을 물어본 결과다. 가장 사랑받은 걷기여행길은 제주올레(24.9%), 갈맷길(8.8%), 한라산둘레길(8.1%), 남파랑길(7.2%), 해파랑길(6.5%) 등의 순으로 꼽혔다. 제주올레와의 격차가 큰 게 아쉽지만, 갈맷길의 방문 비율은 전년 조사 때보다 5.9%포인트 큰 폭으로 증가했다. 당연히 순위도 1년 새 열 다섯 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코로나19 이후 걷기여행길의 관심도에 관해 ‘증가함’으로 응답한 비율도 가장 높은 43.3%에 달했다. 코로나19 시대에 걷기여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한 기사(국제신문 지난 3월 17일 자 2면 보도)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갈맷길 2코스 2구간인 이기대 동생말 해안산책로를 걷는 시민의 사진. 젊은 남녀가 인증샷을 찍는 장면이었다. 이런 센스쟁이라니! 갈맷길의 확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2030 세대인 MZ세대 관련이다.

MZ세대는 1980년생부터 2004년생까지의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생부터 2004년생까지를 뜻하는 Z세대를 합친 것이다. Z세대는 1970년대 무렵에 태어난 X세대, 그 다음의 Y세대에 이은 세대이다. 여기서 ‘Z’는 미지수와 같다는 X세대, 네티즌을 뜻하는 N세대처럼 어떤 뜻을 품고 있는 이니셜도 아니다. 그냥 알파벳 순서로 X, Y 다음이 Z일 뿐이다. 요즘 갈맷길을 찾는 MZ세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통계를 들여다 봤다.

(사)걷고싶은부산은 2013년부터 갈맷길 완보인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완보자 통계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먼저 가장 궁금한 MZ세대 항목을 확인했다. 올해 1∼6월 중 MZ세대 완보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0% 급증했다. 20대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지난 한 해 전체의 수치를 넘어섰다. 30대 역시 지난 한 해 수치에 바짝 다가섰다. 올해 6개월간 20대 완보자는 22명인데, 지난해에는 12개월간 14명이었다. 또 30대 완보자는 올해 6개월간 31명으로, 벌써 지난해 전체 36명에 근접했다. 불과 5명 차이다. 이런 수치가 그토록 중요하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갈맷길 완보인증센터가 처음 가동된 2013년 20대는 9명, 30대는 13명이 전부였다. 2013년 한 명도 없었던 10대 완보자도 올해 상반기 중 12명이나 됐다. 지난 한 해 12개월간 10대 완보자는 2명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단 코로나19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또 ‘갈맷길 대학생 홍보대사’들의 활동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올해 처음 선발한 갈맷길 대학생 홍보대사 10명은 월 1회 SNS를 활용한 갈맷길 홍보에 나서는 한편 팀별로 걷고깊은부산 공식 SNS에도 갈맷길 관련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부산시의 지속적인 갈맷길 홍보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는 2019년 6월 보행권리장전을 제정했고, 이어 7월에는 보행정책 전담조직을 팀에서 추진단으로 끌어올렸다. 그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트레일즈 콘퍼런스(ATC)도 갈맷길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데 한몫했다.

갈맷길 이용자의 급증세는 MZ세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에만 해도 596명이 갈맷길 완보인증센터를 다녀갔다. 이미 지난 한 해 전체 완보자 569명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다. 올해 상반기 완보자 중 5060 세대는 405명으로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세대별 격차를 줄이는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인증샷 장소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갈맷길 코스의 전면적인 재조정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변심’이 아닌, ‘변화’는 필연이다.

편집국 부국장, 걷고싶은부산·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i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