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뒷문이 열린 채 운행하는 1t 탑차를 볼 때는 맘이 조마조마하다. 흔들리는 뒷문이 지나는 차나 행인 얼굴이라도 칠 것 같다. 탑차 안의 제품이 마구 쏟아져 나오려 한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일하는 납품업자들이 겪을 법한 일이다. 필자도 이전 납품할 때 뒷문이 열린 줄 모르고 출발했다가 아찔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납품업자의 고달픈 현실은 소위 ‘을의 끝판’이다. 납품업체 김희광 대표는 주차 단속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실사 나온 부산시 소상공인 지원 담당관에게 온누리상품권 피해까지 호소했다. 거래처에서 납품 대금으로 어쩔 수 없이 받은 1000만 원 정도의 상품권이 집에 그대로 있단다. 오죽하면 온누리상품권만은 받아오지 말라는 아내의 간절한 당부까지 전할 정도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상품권이 되레 납품업체에 떠안겨져 고통이 전가되는 실정이니 기막힌 현실이다.

필자는 작년 12월 본지 칼럼에 ‘버려진 자식, 납품업자!’란 제목으로 납품도매업자를 위한 정책 필요성을 제언한 바 있다.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 지급하는 긴급민생지원금마저 제외되는 등 방치된 납품업자 실정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부산시의회에서는 도용회 의원 주도로 납품업체 지원조례 제정에 나섰다. 시의회는 납품을 위한 주차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주차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납품업자에게 책임처분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며 본회의에서 납품업체 지원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납품을 위해 불가피하게 주차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납품 차량을 등록, 관리하여 억울하게 주차단속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화하는 것과 납품도매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정책이 골자다. 늦은 감 있지만 반길 만하다.

시 조례가 통과되었지만, 주차단속권은 기초 지자체의 행정업무라 구·군 조례 제정이 뒤따라야 한다. 부산경찰청의 협조도 필요하다. 현재 부산경찰청 도로교통 고시에는 1.5t 이하 화물자동차의 경우 도로에 15분 이내로 주·정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상품의 발주·검수·진열·반품처리·유통기한 체크까지의 납품업무 시간이 15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런 이유로 무수한 주정차 과태료 처분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납품업자들은 차량흐름을 지연시킨다는 세상의 손가락질에 입도 뻥긋하기 어렵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주정차 과태료 처분을 받은 차량은 의견진술, 이의신청 등 소명의 자료를 갖추어 면제를 받을 수 있다. 부산진구의회에 의하면, 부산진구의 2020년 불법 주정차 과태료로 부과된 건수는 12만 6300여 건이었다. 이 건수 중, 불법 주정차 과태료 의견 진술로 인한 납품 차량 면제 건수는 3999건이었다. 수많은 납품업체는 생업에 쫓겨 의견 진술도 시도하지 못한 채 과태료 처분을 감내하고 있다.

납품업체 차량 동승 체험을 했던 부산진구 성현옥 의원은 의회 5분 발언을 통해 차량 등록으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갖춘다면 행정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도로변의 주차로 인해 차량통행 방해와 안전사고 우려도 크다. 그러나 끼니까지 거르고 허둥대며 일하는 납품업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또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치분권 2.0시대에 맞는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의 역할과 위상 정립이 커졌다. 지방의회를 통해 주민의 삶을 변화시킴은 자치분권 실현에 핵심적인 내용이다. 기대와 우려 속에 지방자치 경찰제가 전면 시행되었으니 부산경찰청의 열린 자세를 기대한다. 지방자치 30년에 걸맞은 지방분권 주체들의 포용적인 사고와 적극적 협력이 시대 정신이다.

부산시의회 의원 전원이 공감해 통과시킨 조례지만 부산시가 중앙행정 중심의 상위법 타령만 한다면 이들의 희망은 좌초되고 만다. 세상의 무관심에 스스로 ‘투명 인간’이라고 여기며 마음의 문을 닫은 납품업자들이 납품업체 지원조례제정을 계기로 당당하게 노동하는 세상이 되길 기대한다.

(사)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