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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경제 항산항심] 노는 것도 ‘선’이다 /한성안

  • 한성안 좋은경제연구소장
  •  |   입력 : 2021-06-28 19:53:1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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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존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원하는데 이를 위해 인간은 자연자원에 힘과 의지를 가해 생활수단을 새롭게 생산해 낸다. 이런 생산활동을 ‘노동’이라고 부른다. 알고 보니 우리가 노동하는 이유는 바로 ‘잘 살기’ 해서다. 노동은 인간을 살리는 활동인 동시에 ‘좋은 삶’에 필요한 본질적 활동인 것이다. 인간의 이런 본질적인 활동에 주목해선지는 몰라도 성서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노동은 의요 선이다!

노동에 대한 이런 우호적 태도는 여러 경제학자들에게서 발견된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노동을 모든 경제적 가치의 본질로 보았는데, 그의 ‘노동가치론’은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베블런은 노동하지 않으면서 낭비와 과시를 일삼는 ‘유한계급’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노동활동과 기술활동을 하는 ‘산업계급’을 열렬히 찬양했다. 이런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인간을 ‘호모 파베르’, 곧 제작하는 인간으로 이해한다. 이들에게 노동은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이러한 우호적 노동관에 힘입어 인간은 수천 년을 일했고,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도래하자 밤낮없이 노동해 왔다. 산업혁명기 자본가는 자연적 리듬을 거역하면서까지 인간의 노동시간을 연장했다. 자본의 그런 ‘초자연적 전략’은 1960, 70년대 한국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 후, 인공지능시대로 접어든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한국노동자의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 가장 긴 축에 속한다. 그것도 월등히 길다. 2008년까지 장시간 노동 1위를 지켰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멕시코에 2위를 내어 주었다. 결과는 어떤가? 그렇게 죽어라 일만 하니 매년 2000명 이상이 일하다 과로로 죽고, 10만 명 이상이 다친다.

택배노동자는 더 심하다. 작년 조사에 따르면 노동시간은 주 71.3시간으로 전체노동자보다 무려 30시간 더 많다. 오전 6시에 나와 밤 10시에 퇴근하는데, 밤 12시까지 배달하는 사람도 많단다. 이러니 건장했던 가장이 하루가 멀다하고 과로사로 생을 마감한다. 좋은 삶은 고사하고 호모 파베르가 노동도 제작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노동이 사람을 죽이는 사회! 경제 규모 14위, 1인당 GDP 22위의 풍요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현실이다.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법안이 재작년에 통과됐다. 300인 이상 대규모사업장과 공공기관, 그리고 50인이상 중소사업장에서 연차적으로 시행된 후, 올해 7월 1일에 5~49인의 소규모사업장에도 적용되면서 마무리된다.

재계와 보수야당은 경제가 망한다고 여전히 난리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됐다고 망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2003년 주 5일제가 시작될 때도 재계는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는다”고 성토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2003년 3.1%였던 경제성장률이 이후 4년간 4.3~5.8%를 유지했으며, 취업자도 267만명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림으로써 노동자도 ‘좋은 삶’에 한층 더 다가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서와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노동이 좋은 삶에 본질적 활동임은 틀림없다. 노동없이 좋은 삶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노동이 절대적 선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노동이 지나치면 삶을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문화인류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방대한 사료를 연구한 결과, 인간이 ‘호모 루덴스’, 곧 유희하는 존재라고 결론 내렸다. 노동뿐만 아니라 ‘놀이’ 역시 인간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저명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도 인간의 활동을 노동과 제작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인간의 조건’에서 그는 ‘행위’를 가장 고차원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활동으로 추가했는데, 인간은 노동과 제작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행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좋은 삶은 노동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제작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행위, 그리고 놀이에 열중함으로써 인간은 더 인간다워진다. 이제 우리도 좀 놀자! 그리고 의미있는 행위도 해 보자.

5인 미만 사업체에 딸린 503만 노동자들 역시 좋은삶을 바라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쿠팡노동자도 그렇다. 52시간 근무제의 빛이 이들의 저녁을 비추지 않는다면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한성안 좋은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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