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단 kt가 17시즌 동안 연을 맺었던 부산을 버리고 수원행을 택했다. 시민사회는 kt의 ‘연고지 야반도주’를 규탄하며 불매운동을 예고하고 있지만 사태를 되돌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kt는 지난 수년 동안 연고지 이전에 대한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프로농구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 kt 구단에 대한 부산시의 무신경 등 이전에 대한 이유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한국남자프로농구(KBL)가 2018-2019시즌부터 모든 구단에 대해 5년 이내에 구단 사무국 이전과 클럽 하우스 설치 등 연고지 활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자 kt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kt의 이번 결정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추락한 ‘부산의 위상’ 때문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통신사이자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는 kt가 잠재적인 고객인 34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도시를 버리는 속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활력을 잃어버린 도시,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인천에 제2 도시의 자리를 내 준 부산의 쇠락한 이미지로 민간기업이 야반도주하듯 연고지를 버릴 만큼 이 도시의 매력이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매년 일자리를 찾아, 대학 진학을 위해 젊은층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도시, 미래 동력을 상실한 부산의 현주소가 이번 kt 연고지 이전 사태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비약일까.

쇠락하는 도시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대기업 유치와 같은 일자리 창출과 도시 전체를 변모시킬 수 있는 국제적인 메가 이벤트다.

기업 유치는 지금도 애를 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남은 카드는 2030부산월드엑스포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이다. 경제유발효과만도 생산 43조 원, 부가가치 18조 원에 달하며, 일자리도 50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분석됐다. 가덕신공항 건설의 경제 유발 효과 못지 않다.

그런데 부산엑스포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를 보면 ‘미필적 고의 같은 무관심’마저 느껴진다. 지난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올인했던 가덕신공항 건설 추진 때와 비교하면 부산엑스포 추진은 마음이 식어 버린 연인을 보는 것 같다. 가덕신공항 건설의 중대한 당위성 중 하나가 부산엑스포 유치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 유치단과 부산시 관계자는 23일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를 방문해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고, 엑스포 개최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민간 유치위원장은 불참했다. 유치위원회가 아직 구성되지 않은 탓에 위원장은 내정됐지만 공식적인 기구로 활동할 수 없다. 민간 유치위원장이 빠진 유치 신청이 얼마만큼 BIE에 절박한 개최 의지를 전달할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민간 유치위원장 선임 과정도 험난했다. 결과도 부산의 입장에서는 만족할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SK·현대차·삼성·LG·한화 등 국내 대기업에 민간 유치위원장직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일정에 쫓긴 정부는 결국 관료 출신인 김영주 전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내정했다.

치열한 유치전에서 민간 유치위원장의 역할은 크다. 88서울올림픽 때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각각 유치위원장과 특별고문을 맡아 성공적인 유치를 이뤄냈다. 대기업은 세계 각국에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부산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투자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우군을 확보할 수도 있다. 정부가 처음부터 민간 유치위원장에 대기업 총수를 염두에 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가덕신공항에 쏟은 정성의 절반이라도 부산엑스포 유치전에 쏟았다면…”하는 탄식마저 나온다.

윤정길 사회 부장 yjk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