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강원도 영월 서강 선암마을, 충북 영동 초강천 월류봉, 전남 나주 영산강 느러지의 공통점은? 답은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다. 이들 지역 외에도 국내에 한반도를 닮은 곳은 많다. 중요한 건 그 닮은꼴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란 사실이다. 강이 ‘U’자 형태로 휘돌아 흐르는 ‘물돌이’에는 어김없이 비슷한 지형이 생성된다. 지형만이 아니다. 다른 사물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작은 가지는 큰 가지를, 작은 구름은 큰 구름을, 작은 산은 큰 산을 닮았다. 유사한 형상이 무한 반복된다. 자연은 닮은꼴의 기하학적 구조로 이뤄져 있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는 이를 ‘프랙탈(fractal) 구조’라고 했다. ‘조각났다’는 뜻의 라틴어 ‘프락투스(fractus)’에서 따온 말이다. 망델브로가 이 개념을 창안한 건 1967년 ‘사이언스’에 ‘영국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의 총길이는 얼마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다. 우리 남해·서해안처럼 굴곡이 심한 영국 해안선의 길이를 정확히 재려면 미세한 측정 방법이 필요했다. 그 수요를 충족시킨 것이 ‘프랙탈 기하학’이다. 큰 굴곡을 닮은 작은 굴곡이 되풀이되는 해안선을 잘게 쪼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연구 결과는 1975년 ‘자연의 프랙탈 기하학’이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후 불규칙하고 복잡한 자연 현상의 숨은 질서를 찾아내는 요긴한 인식틀이 되었다. 나아가 컴퓨터 예술, 음악 등에도 응용되면서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현대문명의 필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프랙탈 기하학으로 측정한 우리나라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지난 21일 국립해양조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육지와 바다가 만나 형성된 전국의 올해 자연해안선은 9831.69㎞로, 측정을 시작한 2014년(9877.13㎞)보다 45.44㎞(0.46%) 줄었다. 대신 건설공사를 통해 조성된 인공해안선은 5486.78㎞로, 2014년(5085.68㎞)에 비해 401.1㎞(7.88%) 늘었다. 연안 매립이나 방파제·해안도로 건설 등의 소치다. 부산은 인공해안선(205.25㎞)이 자연해안선(203.55㎞)보다 더 길다. 같은 기간 자연해안선은 4.46㎞(2.14%) 감소한 반면, 인공해안선은 33.44㎞(19.46%) 증가한 탓이다.

프랙탈 기하학의 창안은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온전히 파악하려는 열망의 소산이다. 그런데 해안선은 자연적인 것보다 인공적인 것이 많으니, 실낙원(失樂園)의 열쇠를 손에 쥔 듯 허망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