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세상 어느 도시도 가지지 못한 강 산 바다를 한꺼번에 모두를 가지고 있는 자연친화 도시이자 이들에게 둘러싸인 삼포지향(三抱之鄕)이다.
이러한 부산은 엄청나게 앞서 있고 뛰어난 큰 도시라서 견주어 보고자 하는 곳들이 없다. 가령 강 산 바다 모두를 지닌 도시가 있다손 치더라도 감히 그 도시는 부산과 견주어 보려거나 비교해보려 할 엄두가 안 생길 것이다. 급이 다르기 때문에 아예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도시 중에서도 대도시에 해당하는 부산은 금정산 국립공원 추진을 위해 현재 속도를 내는 것을 비롯해서 2013년에 부산국가지질공원 12곳(구상반려암, 낙동강 하구, 몰운대, 두송반도, 송도반도, 두도, 태종대, 오륙도, 이기대, 장산, 금정산, 백양산)이 지질명소로 인증을 받고 있다. 해운대 바다는 도시 부산에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독일 제2 공영방송 ZDF-TV가 오래전에 세계 3대 아름다운 해변으로 선정, 다큐멘터리 촬영을 한 적이 있다. 한반도에서 압록강 다음으로 긴 강인 낙동강은 지금까지도 부산시민에게 생명수 역할을 하는 시민의 강이다.
부산 최고 도심지이면서 중심지인 서면에는 우리나라 근대산업경제의 발원지인 동천이 흐른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던 동천은 피란시대와 1970~80년대 초 경제 발전의 원동력 역할이 끝나자마자 ‘똥천’이란 오명을 뒤집어 썼다.
당시 UN묘지(부산UN기념공원)에 보리를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의 주인공 현대그룹을 제외하고 웬만한 대기업은 동천 유역에 그들의 창업과 개업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LG·삼성·대우그룹 등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이 있다. 그 당시 그들은 동천의 물로 배 속을 채워가며 성장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동천 유역에는 금융단지와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부산은행 본점 등이 있다.
그 옛날에는 동천을 경계로 해서 동래와 부산으로 나뉘어 살았다.
따라서 동천 유역에는 신라의 대증현을 지키던 동평성이, 고려시대에는 부산부곡(富山部曲)이, 조선시대에는 부산성이 있었던 곳이다. 부산 동천을 경계로 해서 살펴보면 서쪽에 부자 부(富)자를 쓰는 부민동 부평동 등이 있고 동쪽에는 가마 부(釜)자를 쓰는 부곡동 부암동 부전동 등이 각각 나눠져 있는 점이다. 조선의 태종은 일본과의 외교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통역 실무자를 양성하고자 왜학을 설치해 일본어 교육을 실시토록 했다. 이후 조선의 부산에서는 대일무역을 왜학역관(倭學譯官)과 동래상인이 담당했다. 거래 장소는 개시대청(開市大廳)에만 제한했다. 균등한 시장권을 위해서 부산에는 4, 9일, 수영에는 5, 10일, 동래에는 2, 7일에만 열도록 했다. 시간은 흘러 특히 동천유역에 접한 동래와 부산에서는 조선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 당시 부산 동천유역으로 되돌아가 본다면 안용복 장군처럼 수준급의 일본어 구사 능력자들이 이 곳에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부터 부산은 조선의 관문으로 국제화 세계화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학습의 장이자 교육의 장으로 변했다. 그래서 장영실 지석영 우장춘 등이 부산 동천을 건넜던 것과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찰스 페더슨이 1900년 초 강보에 싸여서 부산 동천을 건넜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나의 대학 진학을 묵묵히 바라만 보던 어머니도 부산에 계셨다.
많은 대학이 한 때 부산의 산과 하천에서 터전을 만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피란수도 부산에 와서 어렵게 터를 잡고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부산을 떠난다고 섭섭하다는 말도 없이 그들 대학은 급하게 서울로 가버린 시대가 있었다.
이후에 그들은 과거 그들의 터를 둘러보거나 찾아보겠다고 부산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이들 대학으로 찾아간 부산의 학생들도 역시 부산 사람으로 되돌아왔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앞으로는 부산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이용희 숨쉬는동천 대표·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