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하게도 난 내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반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몰랐다’. 작년 초 부산에서 47번째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박현 부산대 겸임교수의 고백이다. 박 교수는 투병생활 동안 코로나 감염 경위 증상 후유증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겪은 한국 의료체계에 관한 비판적 소회 등을 SNS에서 공유하고 책으로 남겼다. 코로나 확산 초기였기 때문에 그의 경험은 일반 국민이나 방역 당국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울림이 컸던 부분은 코로나가 빼앗아간 평범한 일상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깨달음이다.

지난 1년 반동안 세상은 사실상 멈춤 상태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과는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부모님이 누워계신 요양병원 방문은 언감생심. 명절이 다가와도 할머니와 손자는 서로 볼을 비비지 못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의 추억을 상실했고 선생님이나 짝꿍의 얼굴은 희미해졌다. 집합 인원 제한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장 참석은 물론이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거나 커피 한잔 하는 일조차 꺼려졌다. 사직야구장에서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아득하기만 하던 시간이 흘러갔다.

다른 나라보다 늦긴 하지만 우리도 백신 접종에 탄력이 붙고 있다. 1, 2차 접종을 마친 사람부터 1차 접종을 앞둔 사람까지 이제 주변에 흔하다. 후유증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맞기를 잘했다는 반응이 주류다.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 진행 상황에 따라 8명까지 사적 모임 허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달부터 개장한 해수욕장은 벌써부터 피서 인파로 북적인다. 지난해 가을과 올 봄 거의 취소되다시피 했던 지역 축제나 행사는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작년에 못했던 개막식과 레드카펫 행사를 올해는 진행한다는 전제로 준비 중이다. 2학기 등교수업이 예정된 초중고와 대학가에도 곧 생기가 감돌 것이다. 답답한 마스크에서 해방되어 악수하고 수다 떠는 삶으로 돌아갈 날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무사시호일(無事是好日)’이라는 말이 있다. 별일 없이 흘러가는 날들이 실제는 가장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 전해오는 이 경구가 요즘처럼 공감된 적이 별로 없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정작 자신의 집에 있더라는 동화다. 지겹도록 반복되기 때문에 때론 탈출을 꿈꾸지만 막상 잃어버리고 나면 너무나 그리운 게 일상이다. 그 진리를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일깨웠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