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시 원도심인 복만동에 ‘당거(糖居)’라는 아주 직관적이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디저트카페가 있습니다. 굉장히 심플한 이집 팥빙수, 실은 목포의 숨은 명물입니다. 빅마마 이혜정, 손혜원 전 의원,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등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세 사람이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은 팥빙수 입니다. 이들의 만족을 끌어낸 건 다름 아닌 팥 때문입니다. 팥빙수에서 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팥빙수’라는 이름 자체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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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거’의 팥빙수 |
팥빙수에 올리는 팥의 포인트는 두 가지 뿐입니다. 첫째 얼마나 좋은 팥을 고르느냐, 둘째 얼마나 잘 삶느냐. 얼마나 잘 삶느냐는 곧, 삶은 팥의 맛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로 귀결됩니다. ‘당거’에서는 팥 맛에 귀신같은 주인장이 2~3일에 한 번씩 정성껏 삶습니다. 덕분에 잘 삶은 팥의 조건인 형태 색 부드러움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삶는 것만큼 중요한 건 팥 자체의 품질입니다.
‘당거’에서는 오픈 초기 전북 무주에서 생산된 팥으로 단팥죽과 팥빙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목포와 가까운 신안군 ‘어느 섬’에서 좋은 팥이 생산된다는 풍문을 듣고 직접 찾아 갔습니다. 이후로는 그 섬에서 재배한 팥으로 단팥죽과 팥빙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목포의 명물 음식으로 만들자면 당연한 노력입니다.
여기서 제가 신안군의 ‘어느 섬’이라고 표현한 건 어딘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OO도에서 생산된 팥’이라고 미리 밝히면 일종의 선입견이 생깁니다. 이런 선입견이 생겨버리면 팥 맛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청정환경’, ‘해풍을 맞고 자란’ 따위의 키워드에 매몰돼 버립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향토음식 마케팅이 이랬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지역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관념적으로, 관용적으로 소비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건 사실 한국인의 기질과 관계가 깊습니다. 사람 만나면 다짜고짜 ‘어느 지역 출신이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며 호구조사부터 시작하죠. 사람 자체보다 배경으로 판단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이런 성향이 음식을 대할 때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어디서 생산된 팥이라는 거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솔직한 말로 어디서 생산된 팥이라면, 그 팥이 진짜로 좋은지 왜 좋은지 모르잖아요. 중요한 건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먹었을 때 맛있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체 어디 팥이기에 이렇게 맛있어?!’라는 반응이 나올 때, 자연스레 팥이 생산된 지역에 관심이 생깁니다. 이때 생기는 관심은 자발적이고 진지하며 지속적입니다. 그럼 그 지역은 해당 소비자에게 하나의 폴더로 기억됩니다. 일단 폴더가 만들어지면 그때부터는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는 일만 남는 겁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나’와 ‘지역’ 사이에 인연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지만 불특정 다수 소비자의 기억에 내 고장을 폴더로 저장하게 하는 것. 저는 이 방향이야말로 지역이, 그리고 지역의 음식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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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당거’의 팥빙수는 맛있습니다. 무엇보다 삶은 팥 맛이 훌륭합니다. 그 맛에 반해 저는 팥이 생산된 섬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아마 그리 오래지 않아 그 섬에 가지 않을까 싶네요. 목포 여행 가시면 ‘당거’ 팥빙수 꼭 한번 드셔보세요. 그럼 여러분도 저처럼 ‘그 섬’에 관심이 생길 겁니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