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살다 보면 가끔 부산음식이 생각난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에서도 어지간한 부산음식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진한 멸칫국물에 보들보들한 면을 말고, 고명으로 쑥갓 마늘 김 가루 등을 올리고, 짜고 칼칼한 양념을 더해서 먹는 칼국수만큼은 오직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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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고 칼칼한 양념을 더해 먹는 칼국수. |
물론 서울에서도 비슷한 칼국수는 있다. 그러나 일단 서울에 상륙한 향토음식은 보편성을 획득해야 하는 까닭에, 모난 부분을 깎고 다듬어 얌전하게 만드는 게 공식이다. 그래서 서울은 전국의 향토음식이 한자리에 모인 각축장이기는 한데, 막상 해당 지역 출신의 기준에서 보면 허전하고 맥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게 이 작은 나라의 모든 음식을 흡수하는 서울이라는 블랙홀이 가지는 한계다.
“음식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대신 사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향토음식에서 내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나는 몇몇 사례를 통해 지역에서 성공한 브랜드를 서울로 가져가려는 유통 대기업의 노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필사적인지 목격했다. 지역의 브랜드는 대기업의 이런 적극적인 구애와 압력을 웬만해선 이기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서울이라는 큰 시장에서 인정받아 전국구 브랜드로 뜨고 싶은 스스로의 욕망 또한 크게 작용한다. 심지어 요즘은 배달서비스와 RMR제품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배달서비스 업체는 일찍이 향토음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최근 유행하는 레스토랑 간편식(Restaurant Meal Replacement) 시장은 지역 유명 음식점의 대표 음식을 레토르트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집에서 전국의 모든 향토음식과 지역의 유명 맛집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누군가에는 이 새로운 시장이 엄청난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지역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과연 그럴까?
제품이든 음식이든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재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희소성이다. 향토음식의 희소성은 일부러 그곳에 찾아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번거로움’, 음식이 탄생한 공간과 정서 속에서 먹는다는 공감각적 ‘체험’에서 비롯된다. 번거로움과 체험을 거세하면? 당연히 희소성은 줄어든다. 길어야 2, 3년은 반짝할 수 있겠지만, 희소성이 사라진 향토음식은 급격한 속도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내가 이걸 먹으려고 굳이 여기까지 왔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 향토음식의 경제적 가치는 사라진다.
음식이 움직이면 몇몇 특정 업체만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음식을 찾아 사람을 움직이게 하면 지역 전체에 다양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사람이 찾아와서 돈을 쓰게 만드는 것’, 그게 관광산업의 핵심이다. 그래야 희소성의 생명도 길어진다. 지역 음식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서울공화국에서 지역이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지역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 서울에 흡수되지 않은 향토음식을 눈여겨본다. 더불어 이런 음식을 많이 가진 지역이 결국에는 경쟁력을 갖는다고 믿는다.
옛말에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말과 사람은 그럴 수 있지만 음식은 절대, 아무 데도 보내지 말아야 한다. 향토음식은 그 음식이 태어난 곳의 풍경과 공기조차 맛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맛을 지키고 있어야 사람이 온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