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여전히 문화예술계는 코로나19 확진자 추이에 따라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진행되거나 보류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동래구에 위치한 스페이스움에서 피리, 클라리넷, 재즈피아노의 트리오 연주회(사진)를 했다. 한국의 피리와 서양의 피리가 만난 다소 특이한 악기조합의 트리오 연주회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연주회가 끝난 후 관객들은 이 조합으로 앙상블이 가능할까 하는 반신반의 마음이었다가 첫 곡을 듣고 이내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국악기와 양악기에 대한 선입견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도 있었는데 기존 전통음악에 서양음악이 어떻게 뿌리내릴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양악기가 등장한 시기는 1876년부터 일본의 수호조약 이후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뒤 양악기의 수입이 가능해지고 부터다. 이어 외국인 선교사들의 선교도구로 사용했던 오르간이 근대식 학교의 교육용 악기로 흡수되고, 대한제국의 군악대 창설과 문호개방으로 본격적인 양악기가 수입되면서 일제강점기 악기점이 경성에만 20여 개가 있었고, 전국으로 520여 개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방송매체와 축음기를 통해 음악 감상과 연주 활동이라는 새로운 문화영역이 인기를 끌었고, 악기점은 각종 음악회를 주최하면서 서양음악과 양악기의 확산을 주도했던 시기였다. 또한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싼 악기들의 수입으로 하모니카 기타 만돌린 같은 취미용 악기들이 보급되었고, 국악과 양악을 모두 가르치는 사설음악기관도 생겨나게 된다. 당시에는 양악기를 배워서 기존 전통음악 노래를 연주하거나 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적인 선율을 담아내기 용이한 바이올린의 인기가 특히 높았다고 한다. 반대로 피아노는 가격도 비쌌고 전통음악 선율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초창기 대중들에게는 친밀한 악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문연주자들은 전통음악과 서양음악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피아노로 민요를 연주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했다. 1920년대 말부터 재즈를 기반으로 한 밴드가 생겨나며 국악기와 양악기가 신민요와 유행가를 관현악으로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근대음악에서 예술음악(classic)과 대중음악이라는 장르가 구분되고, 대중의 취향이 세분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녹음된 유성기음반을 들어보면 국악풍의 유행가나 민요는 국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편성된 반주로 녹음된 것이 많은데, 이런 혼합 편성의 연주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파격적인 시도였고, 당시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이해가 맞물린 흥미로운 시도였던 것이었다. 요즘 들어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할 것 없이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융합이 더욱 다양해지면서 이런 시도는 더 낯설지 않다. 한국의 피리와 서양피리 클라리넷이 제각각의 소리로 재즈피아노 선율위에서 한바탕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시간이었다.
소리연구회 소리숲대표·음악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