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한국식 돈가스의 탄생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4-06 19:35:48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흔히들 양식(洋食)하면 서양음식을 떠올린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양식을 서양음식으로 해석하는 건 우리의 관점이다. ‘양식’이라는 단어를 만든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식으로 변형된 서양음식’이 더 정확한 의미다. 그러니까 양식은 서양의 어느 나라 음식도 아니고 그냥 일본음식의 한 장르다.

대중의 요구에 의해 탄생한 한국식 돈가스 차림.
일본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텐무왕이 675년 ‘살생과 육식을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래 무려 1200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서양처럼 문명국가가 되고 서양인처럼 큰 체격을 가지려면 고기를 먹고 우유를 마셔야 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육식을 독려했다. 가장 선봉에 선 인물이 일본 만 엔짜리 지폐의 모델인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서양의식주’ ‘육식지설’ 등의 저작물을 통해 육식을 적극 권장했다.

하지만 그건 19세기 후반에 서양을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일본 지도층의 입장이었다. 평생 고기를 먹어본 적 없고, 도구라고는 젓가락만 사용해본 서민들에게 서양음식은 낯설고 불편했다. 이 어색함을 해소해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고기로 만든 음식인데 고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야했고, 포크와 나이프 없이 젓가락만으로 먹을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밥반찬이 되어야 했다.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즐겨 먹었던 ‘포크커틀릿(pork cutlet)’이었다. 일본은 포크커틀릿을 활용해 무려 35년 만에 ‘돈카츠’를 탄생시켰다. 일본에서는 이런 음식을 통틀어 일본음식과 서양음식이 결합됐다는 뜻으로 ‘화양식’ 혹은 ‘화양절충요리’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는 서양을 닮는 것이 곧 근대라는 일본의 국가주의와 계몽주의가 철저하게 개입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화양식이 서양음식으로 둔갑해 들어왔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65년 한일수교 때까지 일본과 단절의 시간이 생긴다. 대신 이 땅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진짜 서양음식이 상륙한다. ‘어느 나라 것이 진짜’인지 가릴 여유가 없었다. 나라 전체가 굶주리는 판국에 절충이니 뭐니 한가로이 따질 형편도 되지 못했다. 국가가 개입하는 대신 대중 스스로 절충을 시도한다. 지난 50년 동안 포크커틀릿이 한국식 돈가스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칠게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포크랑 나이프가 불편해? 그럼 이거 써” 하면서 수저통을 같이 놓고, “고기가 작아서 섭섭해? 그럼 얼마든지 늘려줄게” 하면서 망치로 두드려 왕돈가스를 만들고, “김치 없이 먹으려니 섭섭하지. 단무지도 같이 줄께” 하면서 김치랑 단무지를 곁들이고, “고기 먹는데 풋고추 없으니 느끼하지” 하면서 풋고추랑 쌈장을 제공하고, “밥 먹을 땐 수프보다 찌개가 낫겠지?” 하면서 돈가스백반까지 만들어 버렸다.

나도 한때는 일본음식을 동경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맥락 없이 만들어진 한국식 돈가스를 촌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양을 닮고 싶어 안달 난 일본식 돈카츠보다 대중의 일상 속에서 진화해온 한국식 돈가스에 훨씬 마음이 간다. 우리는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탄생된 한국음식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맛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한강공원 사망 대학생, 유족·친구들 눈물 속 발인
  2. 2‘대장’ 비트코인 숨 고르기 속 이더리움·도지코인 고공행진
  3. 3재개발지 주민이 버리고 간 개들, 들짐승 무리 돼 어슬렁
  4. 4엑스포 경쟁국 뛰는데, 부산 유치위원장도 없다
  5. 5국비 확보된 대저역 환승센터…부산시는 "이용객 적다" 사업 보류
  6. 6부산 최장 보행교 ‘금빛노을 브릿지’, 즐길거리는 망원경 2대 의자 3개뿐
  7. 7[뉴스 분석] 울산 변이 급속 확산…직장·모임발 타고 부산도 전파 우려
  8. 8[기자수첩]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9. 9북항사업 ‘억지 제동’ 자충수에 해수부 사면초가
  10. 10근교산&그너머 <1226> 전북 남원 봉화산
  1. 1호남으로 가는 국힘…영남당 탈피 사활
  2. 2외유출장 임혜숙·밀수입 박준영·관테크 의혹 노형욱…3인방 청문보고서 채택 난항
  3. 3정의용, 일본 외무상에 핵 오염수 우려 표명
  4. 4문 대통령 “아이들 마스크 벗고 뛸 날 앞당길 것”
  5. 5싱겁게 끝난 부산시의회의 박형준호 첫 시정질문
  6. 6국힘 차기 부산시당 사령탑 김도읍이냐 장제원이냐
  7. 7야당 원내부대표 3인 PK 초선 존재감 ↑
  8. 8해수부, 북항 사업비 변경 기재부와 협의 불필요 알았다
  9. 9재개발 규제 완화 추궁하자 박 시장 “공급확대 위해 필요”
  10. 10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3> 조해진
  1. 1‘대장’ 비트코인 숨 고르기 속 이더리움·도지코인 고공행진
  2. 2북항사업 ‘억지 제동’ 자충수에 해수부 사면초가
  3. 3울산 핵심사업 ‘동해1 부유식 해상풍력’ 예타 통과…2026년 전력생산
  4. 4[경제 포커스] ‘청산결제본부’로 부산 본사 띄우기 나선 거래소
  5. 5부산 지자체 ‘중기협동조합 육성조례’ 제정 외면
  6. 6[브리핑] 정부, 가상화폐 관련 펀드 투자
  7. 79월 ‘수소모빌리티+쇼’에 국내외 기업 대거 출격
  8. 8“9년 만에 2%대 물가상승 우려” vs “1%대 안정적 흐름 전망”
  9. 9[브리핑] ‘스마트 특성화사업’ 市 2개 선정
  10. 10기재부, ‘찾아가는 지방재정협의회’ 부울경 13일 개최
  1. 1한강공원 사망 대학생, 유족·친구들 눈물 속 발인
  2. 2재개발지 주민이 버리고 간 개들, 들짐승 무리 돼 어슬렁
  3. 3엑스포 경쟁국 뛰는데, 부산 유치위원장도 없다
  4. 4국비 확보된 대저역 환승센터…부산시는 "이용객 적다" 사업 보류
  5. 5부산 최장 보행교 ‘금빛노을 브릿지’, 즐길거리는 망원경 2대 의자 3개뿐
  6. 6[뉴스 분석] 울산 변이 급속 확산…직장·모임발 타고 부산도 전파 우려
  7. 7[기자수첩]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8. 8“소상공인 제품 팔아드려요” 전국 9개大 함께 쇼핑몰 구축
  9. 9부산 해수욕장, 방역 강화 개장 채비
  10. 10김해, 미래차 부품 메카 도약 ‘부푼 꿈’
  1. 133세 양현종, 텍사스 최고령 선발 데뷔
  2. 2토트넘서 쫓겨난 모리뉴, 보름 만에 재취업
  3. 3맨시티 첫 UCL 결승 진출…우승 향한 쾌속 질주
  4. 4조급한 허문회 감독, 자충수만 반복
  5. 5롯데 5연패 '수렁'…신인투수 나균안 데뷔는 합격점
  6. 6자이언츠, 5·6일 ‘롯데ON’ 행사
  7. 7부산 아이파크, 김천 상무에 이번엔 패배
  8. 8이동욱 감독, 3년 더 공룡군단 지휘
  9. 9아이파크 투톱 박정인·안병준, K리그2 9R 베스트 11
  10. 10김광현, 첫 메츠 사냥 나선다
우리은행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조해진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윤영석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한 도시의 리더가 된다는 것
‘융합의 시대’를 진정으로 지향하려면
기고 [전체보기]
신경제 ‘3不’ 해결로 구조적 불균형 해소 /허현도
판교형 ‘산학연 뉴타운’ 만들자 /손동운
기명칼럼 [전체보기]
수에즈 단상
윤석열, 정치 선언 전에 감정(堪政)인증부터
기자수첩 [전체보기]
체계적인 ‘동백전 행정’ 쫌! /김진룡
지역대 ‘벚꽃엔딩’ 없도록 내실 다져야 /김화영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한국피리, 서양피리를 만나다
한국음악의 떼루아를 찾아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분홍색 신화
세기의 이혼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우리에게 외교 전략이 있는가 /허만
불법 주·정차 단속 애환 /박정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음식은 움직이는 거 아닙니다
한국식 돈가스의 탄생
사설 [전체보기]
정화작업 어땠기에 부산시민공원 또 기름 발견되나
도덕성 흠결 많은 장관 후보자들 임명 신중해야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시험대 오른 박형준표 협치
재보선 민심 받들겠다더니
정책 제언 [전체보기]
코로나19는 사람을 차별했다 /박민성
목전에 다가온 메가시티 실현 /강병중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오월의 노래
봄날의 상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어게인
그 날을 기다리며
특별기고 [전체보기]
민주화·민족자존에 바친 삶, 편히 쉬소서 /허운영
‘보다 섬세한 스승’을 떠나보내며 /장현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나비 그림의 명인, 남계우
김정희의 ‘세한도’ 열풍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2021부산하프마라톤
  • 바다식목일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