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특별기고] ‘보다 섬세한 스승’을 떠나보내며 /장현정

고 채현국 이사장 추모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4-05 20:04:15
  •  |  본지 2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많이 좋아하고 따랐던 채현국(경남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 선생님이 지난 2일 돌아가셨다. 휴일 오후에 양산 개운중학교에 마련된 추모 분향소에 다녀왔다. 빗방울 사이로 얼마 남지 않은 벚꽃잎이 흩날리며 봄날이 가고 있는 교정을 둘러보니 선생님과 이곳에서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 더욱더 쓸쓸했다.

채현국(오른쪽) 효암학원 이사장과 장현정 호밀밭출판사 대표가 양산 효암고 ‘쓴맛이 사는 맛’ 비석 앞에 서 있다.
내가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건 2014년 봄이었다. 그해 한겨레신문 신년호에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고무돼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었다. 그날 선생님은 우선 학교를 좀 보여주고 싶다며 교정 이곳저곳을 구경 시켜 주셨다. 직접 만들고 심고 가꿔놓은 연못이며 옥수수, 꽃, 나무를 보며 그 하나하나의 내력을 얘기할 때 신이 난 표정은 정말 아이 같았다. 선물로 준비한 과자와 내가 쓴 책을 한 권 내밀자, “책 쓰는 사람이오? 학교 선생이오?” 하고 물으시면서 “에이, 그럴 줄 알았으면 안 만날 걸, 나는 선생 별로 안 좋아하오”라며 그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셨던 것도 기억난다.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했을 때, 정색하시며 “우리는 원래 나이나 서열 상관없이 서로를 높여 불렀소. 장 선생도 후배들에게 그리하소. 앞뒤 없이 반말하고 서로를 낮게 칭하자는 것은 일제 문화요. 나는 그런 것은 몸에 맞지 않아요”라고 하셨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후로도 가끔 선생님이 계신 양산에 찾아가 산책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에는 근처 ‘다와’라는 술집에 가서 생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 술집은 마침 내가 잘 아는 후배 부부가 운영하던 곳으로 선생님이 가끔 혼자 찾아가 술을 마시던 단골집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당신의 인생은 형의 자살 이후 180도 바뀌었다는 이야기, 젊은 나이에 막장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을 휘어잡으며 사장 노릇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 등 살아오신 얘기도 듣고 “사람은 머리가 복잡해야 살아있는 거고, 삶은 그 맛이 쓸 때 더 깊어지는 것”이라는 어른의 지혜도 새겨들었다. 돌아보면 순간순간이 매번 복되고 귀중한 시간이었고 늘 시간이 모자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해 여름, 나는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LIG문화재단 계간지 ‘인터뷰’에 싣기도 했다.

2017년 9월에는 서울 녹색병원에 입원해계신 선생님을 뵈러 가기도 했다. 비 오는 새벽, 한 시간 남짓 선생님이 탄 휠체어를 밀며 면목시장도 한 바퀴 돌았다. 요즘 뭐 공부하느냐 물으시며 동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게 특히 기억난다. 병실로 돌아와 선생님을 침대에 눕힌 다음 몸 구석구석을 닦아드렸는데, 선생님은 그사이 아이처럼 입을 조금 벌리고 곤히 잠드셔서 나는 그 표정을 한참 바라봤다. 그해 면목시장에서 새벽 3시에 맞았던 가을비를 잊지 못한다.

사상이나 지식을 너무 믿지 말라고, 사람은 지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심보로 살아야 한다던 말씀. 작은 체구지만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말할 때마다 얼굴과 몸 전체를 움직이며 다양한 표정을 지으셨던 이 시대의 거인. ‘어른’이라는 말의 무게가 땅에 떨어져 조롱거리가 된 시대에, 역설적으로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발로 차버리고 진짜 어른의 품위와 지혜를 느끼게 해주신 고마운 분. 만날 때마다 머리와 가슴이 상쾌해져서 늘 보고 싶었던 분. 시시하고 묵묵하게 살아가는 일의 진가를 확인해주시고 늘 용기를 북돋워 주신 분. 사람은 계몽이 아닌 어울림의 대상임을 몸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부끄러운 시절에 돈 많이 번 것이 무슨 자랑이냐면서도 그 돈으로 아낌없이 우리 현대사 곳곳을 조용히 받쳐주신 분.

지난 6년 남짓, 선생님과 보냈던 시간을 돌아보며 새삼 그 크고 깊은 뜻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마음에 품은 소중한 인연이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세상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진다.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선생님께서 편히 잠드시길 소망한다.

호밀밭출판사 대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특정선수만 기용, 유망주 외면…‘꼴찌 롯데’ 전락에 팬도 등 돌려
  2. 2‘장기표류' 부산 해상관광케이블카 재추진
  3. 3명지신도시 2단계 사업…2.4㎞ 인공수로 뚫고 산책길 조성
  4. 4재판 족쇄 벗고 대선? 김경수에 쏠린 눈
  5. 5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 경질, 새 사령탑에 서튼
  6. 6부산 7만 소상공인 부담 던 ‘무료 콜체크인’
  7. 7부산 강서구 행복주택 사업, 지역민 거센 반발
  8. 8지역중심시대 부울경 기업을 응원하다! <7-중> 박원욱병원②
  9. 920대 AZ 금지도 모르고 주사 놔준 병원…백신관리 도마 위
  10. 10양산 명언마을 양돈단지 전원주택 탈바꿈
  1. 1재판 족쇄 벗고 대선? 김경수에 쏠린 눈
  2. 2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4> 김웅
  3. 3김미애, 백신 부작용 국가가 입증하는 법안 발의
  4. 4국힘 당권 ‘영남권 중진-수도권 신진’ 대결로
  5. 5문재인 대통령, 장관 후보 3명 청문보고서 재요청
  6. 6홍준표 복당 선언에…국힘 PK 초선들 찬반 팽팽
  7. 7취임 4주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33.9%
  8. 8국힘 당권 레이스, 불 붙은 혁신경쟁
  9. 9문재인 대통령 "흠결 무안주기식 청문회" 장관후보 3인 임명강행 의지
  10. 10부산 여야정 상생협의체 구축 합의…초당적 협치 가속화
  1. 1명지신도시 2단계 사업…2.4㎞ 인공수로 뚫고 산책길 조성
  2. 2부산 7만 소상공인 부담 던 ‘무료 콜체크인’
  3. 3지역중심시대 부울경 기업을 응원하다! <7-중> 박원욱병원②
  4. 4당감4구역·전포3구역에 주택 3766가구 공급
  5. 5해수부 석연찮은 감사 연장 비난 봇물
  6. 6떠오르는 사하 ‘대티역스마트W인공지능’ 특별분양
  7. 7저공해차 구매 실적 기장도시공단 150%, 동래구 0%
  8. 8최준우 주금공 사장 “40년 청년 모기지 하반기 도입”
  9. 9스벅 ‘굿즈 이벤트’ 1회 주문 20잔으로 제한
  10. 10가상화폐거래소 빗썸·업비트, 또 서버 오류로 매매 지연
  1. 1‘장기표류' 부산 해상관광케이블카 재추진
  2. 2부산 강서구 행복주택 사업, 지역민 거센 반발
  3. 320대 AZ 금지도 모르고 주사 놔준 병원…백신관리 도마 위
  4. 4양산 명언마을 양돈단지 전원주택 탈바꿈
  5. 5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 <9> 동래구 ‘허그라운드’
  6. 6부산 남구청장 공약 ‘안심상가’, 임기 안에 달성하려 졸속 추진
  7. 7김해, 부울경 순환선 건설 맞춰 연계 교통망 구축 나선다
  8. 8부산대 등 10개 국립대, 학생지도비 94억 허위로 타내
  9. 9해상타워 줄여(6개→ 3개) 환경훼손 최소화…매출 3% 지역기부 계획도
  10. 10부산관광공사 등 지분 참여 가능성…시민 공모도 검토
  1. 1특정선수만 기용, 유망주 외면…‘꼴찌 롯데’ 전락에 팬도 등 돌려
  2. 2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 경질, 새 사령탑에 서튼
  3. 3“선수 성장 집중…공격야구 펼칠 것”
  4. 4멀티골 황준호, 11라운드 MVP
  5. 5kt 허훈, 어린이 후원금·쌀 기부
  6. 6공격 본능 깨어난 아이파크…‘닥공’으로 부활하나
  7. 7웨스트브룩 ‘182번째 트리플더블’
  8. 8롯데 새 감독 래리 서튼은 누구?
  9. 9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후임 래리 서튼 감독
  10. 10“최강은 나야 나”…‘고교 월드컵’ 16일 개막
우리은행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김웅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조해진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한 도시의 리더가 된다는 것
‘융합의 시대’를 진정으로 지향하려면
기고 [전체보기]
글로벌 마이스 도시 부산을 꿈꾸며 /오흥철
한국 해운, 재건을 넘어 부활로 /김형준
기명칼럼 [전체보기]
기본소득 포퓰리즘, 가짜와 짝퉁의 대결
수에즈 단상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체계적인 ‘동백전 행정’ 쫌! /김진룡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한국피리, 서양피리를 만나다
한국음악의 떼루아를 찾아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미얀마의 봄
미·EU 백신 갈등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우리에게 외교 전략이 있는가 /허만
불법 주·정차 단속 애환 /박정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음식은 움직이는 거 아닙니다
한국식 돈가스의 탄생
사설 [전체보기]
취임 한 달 박 시장, 이제부턴 과감한 실행력 보여야
지역 소상공인 오픈마켓 지원, 성공적 정착 기대한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시험대 오른 박형준표 협치
재보선 민심 받들겠다더니
정책 제언 [전체보기]
코로나19는 사람을 차별했다 /박민성
목전에 다가온 메가시티 실현 /강병중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오월의 노래
봄날의 상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와인어게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공공콘텐츠 없인 북항 성공 없다 /서의택
민주화·민족자존에 바친 삶, 편히 쉬소서 /허운영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나비 그림의 명인, 남계우
김정희의 ‘세한도’ 열풍
  • 해양컨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