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젊은 인구의 비율이 아주 높다. 30세 이상 부산 인구 가운데 전문대 졸업 이상의 비율이 11.8%이다. 젊은 만큼 활력이 있고 지식 수준이 높은 것이 부산 발전의 가장 큰 잠재력이다’.
1994년 부산발전연구원에서 펴낸 ‘부산경제론’ 의 한 대목이다. 책과는 달리 지금 부산은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이면서 청년들이 줄지어 떠나는 곳이다. ‘지방소멸’의 현상이 가장 단적으로 나타나는 도시이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015년 부산에서 수도권으로의 이동은 4100명 정도였지만 2018년은 1만2000여 명, 2019년에는 1만3000여 명으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로도 지난해 부산 인구는 또 2만2000여 명이 줄어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청년세대이다.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부산을 탈출하는 것이다. 2020년 부산의 고용률은 54.1%이다. 강원도의 52.8%에 이어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그래서 4월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모든 후보들이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근데 기업 유치가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사실 부산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60~70년대 한국의 산업 수도 또는 제조업의 중심지는 부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용 규모로 따져 한국 100대 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부산에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2년부터 부산은 성장억제도시로 관리 대상이 된다. 부산에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해 법인을 설립하거나 공장을 지으려면 다른 지역보다 지방세를 5배 더 내야만 했다. 1972년은 유신헌법에 따라 간접선거로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였다. 10년 뒤 전두환 정부 때인 1982년에도 부산은 국토계획에서 성장관리도시로 또 지정된다.
부산에서 신설 회사에 대한 규제 사슬이 풀린 것은 지방자치선거가 도입된 1995년부터다. 부산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규제를 받은 지 23년 만이었다. 그 사이 부산경제를 이끌었던 덩치 큰 기업들은 모두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고 신설 기업은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했다. 부산에 남았던 기업들은 동명목재나 국제상사처럼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상사 양정모 회장은 5공 청문회에서 정치자금을 적게 낸 것이 기업해체의 원인이라고 밝힐 정도로 이들 기업의 도산에는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는 설도 있었다. 그래서 부산 경제의 몰락은 부산의 무능한 리더십의 문제도 있겠지만 권위주의 정부에 의한 타살의 혐의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을 강제로 지역으로 데려오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새로운 사업의 사업권을 주면서 지역으로 유치하는 것이다. 1994년 삼성자동차의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산하의 공공기관 이전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증권거래소와 한국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 영상진흥위원회 등의 부산 이전이 그것이다. 문현금융단지나 센텀의 영상 클러스터들이 11곳의 이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공공기관들을 부산으로 끌어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부산시장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대형 기업들의 부산 이전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19년 경북 구미시는 공장 용지의 무상임대, 직원 사택·수영장·체육시설 공급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음에도 SK 하이닉스반도체 유치에 실패했다. 부산이 이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까? 기업 유치 노력을 하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유치 노력과 함께 이미 지역에 있는 기존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역량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
2019년 경쟁 끝에 부산지역에 지정된 부산 블록체인특구만 해도 2028년까지 4만 명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해 11월 착공된 부산 강서구 스마트시티도, 블록체인과 연계돼 데이터시티가 될 수 있다.
부산이 오프라인에서는 해양수도가 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드론 등 첨단기술이 접목되면 스마트 물류도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존 산업들도 ICT와 접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요즘은 전통시장들도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고 집까지 배송해주는 시대이다. 부산의 전통제조업들을 디지털 혁신을 통해 덩치가 커질 수(scale up) 있도록 행정이 고민하고 지원해야 한다. 3D 프린터로 출력해 지은 집이 기존 집의 절반 가격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 허리띠도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대신 요즘은 내장된 ICT 칩으로 체중과 건강정보를 관리해준다고 어필한다.
토목공사 위주의 아날로그식 성장 시대는 이제 끝났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리더십’의 시장이 필요한 때이다.
부산대석좌교수·前 한국인터넷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