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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하버드 신화는 없다 /이승렬

로스쿨 교수 괴논문, ‘위안부=매춘부’ 망언…‘돈에 팔린 양심’ 비난

총장 ‘학문 자유’ 두둔…세계 1등大 명성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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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흑백 TV가 대세였던 시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이라는 하버드대학교, 그 중 수재들만 모인다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됐다. 아마 그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하버드 신화’가 만들어진 시기 말이다. 그 시절 하버드는 명문대의 대명사였다. “서울대가 서울에 있으니, 하버드대는 하버드에 있다”며 고집을 부리는 이도 있었다. ‘해외유학은 하버드’라는 말이 이때부터 생겼다. ‘하버드 출신’이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지손가락부터 치겨 세워주는 관행까지 생겼다.

하지만 근래 하버드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과 기대에 균열이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램지어 망언 파문’이다.

하버드 로스쿨의 존 마이크 램지어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라고 규정한 논문을 썼고, 3월에 발행되는 학술지에 실릴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조선인 위안부들에 대한 일본 정부나 군의 강제성은 없었고 민간업자와 당사자간 자유 계약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다 아는 하버드 로스쿨의 교수가 쓴 ‘가짜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게재됐을 때 가장 기뻐할 자들이 일본 내 극우세력인 것은 불문가지다.

지난 1일 이 사실이 알려진 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를 향한 비난과 함께 논문 철회 및 사과 요구가 빗발쳤다. 특히 공분을 산 것은 램지어 교수가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으며 2018년에는 일본 정부의 훈장인 욱일장(旭日章) 6가지 중 3번째인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을 받았고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석좌교수라는 점이었다. 돈과 훈장에 대한 보은으로 수여자의 입맛에 맞는 글을 논문 형식을 빌어 생산해 낸 것이며, ‘OEM 법 논문 기술자’라는 비판까지 난무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태연하게 “나의 논문과 일본정부 및 기업은 관계가 없다. 논문 자체에 대한 토론은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일본 우익 학자들의 적극적인 옹호에 더해 한국의 일부 친일성향 극우 인사들까지 자신을 비호한 것에 고무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에게서 수백만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혐의로 1961년 이스라엘 법정에 섰던 나치스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선량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표정으로 시치미를 뚝 떼는 모습은 아이히만의 데자뷔이다. 그래도 아이히만은 “지시받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라도 댔지만, 램지어 교수는 ‘학자로서 정당하다’는 태도만 유지하고 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설파했던 ‘악의 평범성’의 21세기판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 그에 못지않게 기막힌 일이 또 일어났다. 하버드대 로렌스 바카우 총장이 ‘학문의 자유’라며 램지어 교수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바카우 총장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철회시키라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항의 메일에 대한 답변에서 “논쟁적인 견해를 표현한 것도 학문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연 면죄부가 가능할까? 당장 “독일 나치를 두둔하거나 흑인 노예제를 옹호하는 논문을 썼어도 똑같이 답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미국 등 서양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규명된 악행에 대한 옹호도 학문의 자유 범주에 해당하느냐는 물음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을 비롯한 아태지역 국가에서 위안부로 상징되는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 역시 역사적으로 규명된 진실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하버드가 내세우는 ‘학문의 자유’ 수준이다. 적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문이라면 가해자와 피해자 측 자료와 피해자 인터뷰, 유엔 등 제3자의 조사보고서 등을 두루 살펴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함에도 램지어는 가해자인 일본 측 자료만 인용했다. 객관성을 상실한 편파적 교수의 논문에다 총장까지 이를 학문의 자유라고 두둔하는 수준이라면 더 볼 것도 없다.

이쯤 되면 사안은 교수 개인의 문제를 넘어 세계 최고 명문대라는 타이틀에 대한 실망과 불신으로 확대된다. 특히 바카우 총장의 인식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학은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대상일 뿐’이라는 말이 연구비 몇 푼 챙기려는 교수뿐만 아니라 대학사회 전체를 규정하는 명제이며 하버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하버드 신화’는 없다. 이 깨달음은 이번 사태의 유일한 긍정적 효과다. 하버드에는 공부벌레도 많지만 그냥 ‘벌레’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은 덤이다. 아울러 차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명문대 일변도의 ‘학벌 신화’까지 깨트리는 계기로 작용한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댕큐, 램지어! 댕큐, 바카우!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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