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창궐 후 ‘조금만, 조금만 견디자’하고 스스로 위로하던 시간이 자그마치 1년이다.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가게를 접으려고 해도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기간이 남은 임대료, 폐업과 동시에 상환해야 하는 사업자 대출, 원상회복해야 하는 점포 인테리어 등 폐업도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씁쓸한 실정이다. 급기야 고리의 불법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겨우 버티는 자영업자의 처참한 몰골은 흡사 거리에 널브러진 ‘폐업’ 글씨의 찢긴 종이다. 설날 연휴가 끝난 직후 자영업자의 탄식에 현장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알쏭달쏭하고 묘한 세상일을 요지경이라고 한다. 혼돈과 위기의 세월로 내몰린 자영업자를 ‘요지경’ 같은 정책 하나가 ‘희망고문’하고 있다.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이지만 그 혜택이 대기업에 돌아가니 알쏭달쏭 요지경 정책이다. 어째 부모에게 받은 학자금을 동네 불량배에게 뜯긴 기분이다. 다음 달이면 새로운 운영대행사로 바뀔 지역화폐 ‘동백전’ 이야기다.

‘동백전’은 코로나로 인해 지옥의 터널 속에 갇힌 자영업자를 구제할 정책으로 보였다. 기대와는 달리 시작부터 불안하더니 캐시백 지급이 중단되는가 하면 운영대행사의 과업 불이행으로 인해 작년 내내 파행을 겪었다. 현장에서 요구해 발행되었지만, 애초의 추진 목적과는 다르게 운영됐다. 캐시백에 의존한 단편적인 매출 견인 수단에 그치면서 대기업 운영대행사에 100억 원 가까운 엄청난 운영수수료를 안겼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충격적인 불명예 사퇴로 인해 선장 없는 시 행정이 문제였다. 누구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작년 내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은 ‘가난한 양반 씻나락 주무르듯 한다’는 옛말을 떠오르게 한다. ‘국가 예산이 편성되었으니 지원한다’는 편협한 생각을 넘어 ‘캐시백 예산을 마중물 삼아 골목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백년지계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필요했다. 시 행정을 지켜보는 속상함은 가뭄에 쩍쩍 벌어진 논밭을 대하는 새까맣게 탄 농심 같았다.

시장 보궐선거는 가덕신공항 건설이나 ‘어반루프’ ‘한일 해저터널’과 같은 공약으로 관심이 증폭돼 왁자지껄 말들이 많다. 하지만 당장 숨넘어가는 중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가슴에 선뜻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이다. 살아갈 일이 막막한 사람에게 1년 뒤, 10년 뒤의 꿈을 이야기하면 들리지 않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게를 일으켜 세울 긴급조치다. 골목상권을 살리고 부산경제를 지켜낼 긴급처방전이다. 물론 미래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부산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거시공약도 필요하다. 1년 남짓한 임기의 시장 보궐선거에 나오는 공약은 당장 곪아 터져버린 가게를 일으켜 세울 긴급조치가 우선돼야 한다. 꿈을 이야기하려면 지금의 끼니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생일상 받으려 주린 배로 살 수 없으니 말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공약은 캐시백 지급 외에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백전을 개혁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공약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무너진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을 치유할 비전을 담은 공약이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신음하는 시민을 위로하는 공약이어야 한다.

‘매림지갈(梅林止渴)’이란 사자성어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며 동기 부여의 중요성을 말할 때 인용된다. 진나라의 사마염이 오나라를 공격할 때 긴 전쟁 속에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치고 식수도 바닥이 났다. 병사들은 목마름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때, 사마염은 “조금만 참자. 아직 다 여물지 않아 매우 신 매화나무 숲이 언덕 너머에 있다. 신 매화가 갈증을 없애 줄 것이다.” 사마염의 말에 매실의 신맛을 떠올리며 입에 침이 가득 고인 병사들이 거짓말처럼 진격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다는 일화다.

오늘도 지갑 속 어머니 낡은 사진을 꺼내 보듯 시장 후보들의 공약을 유심히 본다. 사마염의 기지처럼 작금의 아픔을 치유하며 포스터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자영업자의 삶을 움틀 수 있게 해줄 시장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뭄으로 쩍쩍 벌어진 모심은 논에 철철 물 들어가는 소리처럼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줄 그런 시장 말이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