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댑(잭 스패로우 선장 역) 주연의 영화로 친숙한 ‘캐리비안의 해적’. 그런데 이 해적이 현대 주식시장 탄생의 ‘숨은 공신’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이 역사로 증명된다.
캐리비안 해적의 전성기는 16세기 후반 이후의 이른바 ‘대항해 시대’였다. 초창기 주된 약탈 대상은 스페인의 보물선들이다. 신대륙에서 약탈한 금 은 보화를 싣고 유럽으로 향하던 보물선들. 해적들은 ‘너희가 약탈한 것을 우리도 약탈하겠다’며 설쳐댔다. 스페인 정부가 호위함대까지 붙였지만 약탈 대상은 보물선에서 ‘갤리언 무역선’까지 확대됐다. 결국 스페인의 갤리언 무역은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투자자가 줄어 쇠퇴했다. 귀족과 상인 몇명이 전 재산을 투자해 성공하면 ‘대박’이었지만, 해적에게 약탈당하면 하루 아침에 ‘쪽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네덜란드는 ‘쪽박’의 위험성을 줄일 묘책을 고안했다. 17세기 초 설립한 동인도회사와 서인도회사다. 이들이 도입한 합자회사 제도의 핵심은 위험 분산이었다. 합자회사는 위험을 수천 수만의 투자자에게 나누고, 개인들은 여러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또 회사에 수익이 나도 즉시 받을 수 없는 대신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현금화 할 수 있었다. 잘 되는 회사의 주식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주식시장이다. 위험이 분산되자 선원, 직공, 하녀들도 투자대열에 뛰어들었다. ‘개미군단’의 원조 격이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1700년 1인당 GDP 세계 1위의 부자 나라가 됐다. 그리고 이 열풍은 수백년이나 이어져 오늘날 고도로 복잡하고 광범위한 세계 주식시장 형성에까지 이르렀다.
현대 주식시장에서 위험 분산을 위해 도입된 제도 중 하나가 ‘공매도’다.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매도했다가 가격이 떨어지면 재매수해 갚고 차익을 남기는 기법인데, 하락 장에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위험 분산 방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자금력과 정보력에서 우세한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에게 유리한 데다 불법 시세조종 우려까지 있어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컸다. 정부도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 공매도를 일시 금지했다. 그런 와중에 코스피200, 코스닥150 구성 종목의 공매도가 5월 3일 재개된다는 소식에 동학개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공격적 성향의 외국 ‘헤지펀드’들이 시장을 교란시킨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개미’들에게는 ‘헤지펀드’가 ‘해적’이나 마찬가지다. 헤지펀드에게 공매도는 해적의 대포보다 더 위험한 무기다. 경고음이 켜졌다.
이승렬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