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달력의 숫자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에 하는 일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해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꼼꼼하고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해서 그대로 행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항상 변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로 인해서라기보다는 가족, 지인, 사회적 이유 때문이다. 특히 2020년에는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계획한 일을 이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면 다른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짧게 갈 줄 알고 아무런 계획 없이 시간만 축냈다.

누구나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19 전염병은 시간 낭비 외에 가정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전염병 때문에 행동의 제한이 많으니 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졌고 그에 따른 소득이 없어진 것이다. 알바 자리조차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그저 전염병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신축년에도 전염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괴롭힐 것이고 익숙한 행동을 제한할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우리의 일상을 괴롭혀도 우리는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간다.

살면 살수록 내일이 오늘과 같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을 거라는 희망이 있기에 살아간다. 내일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휘청거릴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기에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비록 희망에 속을망정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는 이유이다.

우리를 둘러싼 불행에서 희망만을 남겨둔 인물이 판도라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격노해 인류에 재앙을 주려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령을 내려 인류 최초의 여자를 만들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판도라에게 아테나는 베 짜는 법을,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헤르메스는 꾀를 선사했다. 그래서 모든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판도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그는 미모와 재능을 얻은 판도라에게 빠져 형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을 한다. 제우스는 결혼 선물로 밀봉된 상자를 하나 보낸다. 결혼을 한 후에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판도라에게 그 상자를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판도라는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남편의 당부에도 열고 만다.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여는 순간 질병 갈등 전쟁 등 인류의 온갖 재앙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희망이 빠져나가기 전에 서둘러 상자를 닫았다. 판도라 상자 덕분에 우리는 절망의 끝자락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의 옷을 입고 있으면 벼랑 끝으로 내몰려도, 칼 날 위에서 춤을 추어도 다 이겨나갈 수 있으며,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운다고 한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다면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겠지만 본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인지라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될지 모른다. 금방 찾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곧 있으면 신축년 새해, 새날이 밝는다. 새해는 분명 어제와 같은 날이지만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지난 일을 정리하고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첫걸음을 떼기 때문이다. 새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도전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이다. 현실에 안주하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꿈을 이룰 수가 없다.

세상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스스로 개척해야만 열린다. 특별한 새해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가정의 행복도, 꿈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다. 전염병이 우리를 덮치는 것 같이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많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시간 낭비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서 인생이 꽃피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라는 굴레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때로는 한 번씩 쉬어 가는 것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을 즐겨야 새로운 날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