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 19로 끝나는 한 해다. 2020년은 코로나19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올 한 해 전 세계를 꼼짝하지 못하게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했을까. 코로나19는 경제 문화 교육 여행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피해를 가하고 있다. 문제는 계속 변이되어 확산되는 이 바이러스가 언제 종식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불안과 공포를 동반한다.
코로나19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2020년 부산의 겨울은 연말의 아쉬움과 설렘마저도 가져갔다. 필자의 사무실이 있는 남포동은 해마다 12월이면 광복로 빛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빛축제 준비를 다 하고도 불을 켜지 못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까닭이다. 남포동에서 광복동, 그리고 신창동, 중앙동까지 이어지는 길의 많은 점포가 비어 휑뎅그렁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20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97명 늘어 최다 기록을 깼다고 발표했다. K방역 신화가 무색할 정도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밤 9시면 도시의 불은 꺼지고 견디다 못해 가게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데 주가는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아파트 가격도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다.
배우 김광규는 연예대상 수상 소감에서 유재석을 형이라 부르며 “재석이 형, 집값 좀 잡아줘요”라는 말을 해 참석한 사람들을 잠시 당황하게 했다. 웬 생뚱맞은 수상소감이냐 하겠지만 그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집값이 떨어진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년 전 6억 원이던 집이 지금은 13억 원이 됐다며 전세 사기당할 때보다 지금 상처가 더 큰 거 같다고 했다. 집에 있는 순간마다 고통이라고 한 것은 비단 그만의 상처일까.
영끌(영혼을 끌어 모아서)로도 내 집 마련은 요원한데 국토부장관으로 내정된 변창흠 후보자는 막말로 서민 가슴에 상처를 덧냈다. 2016년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던 교육부 관료의 발언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말에는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이 담겨 있다는데 그의 말을 듣고 우리는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늘 아래로, 더 아래로 가야 한다”고 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삶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을 지향하는 사회가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인간끼리 경쟁을 부추기며 강한 자만이 부를 누리는 사회라고 말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불러낸 그의 정신이 더욱 그리워진다.
부산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기억은 안 나지만 혐의는 인정한다”는 오거돈 전 시장을 대신할 보궐 선거가 내년에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경선에 뛰어든 후보부터, 거론되는 후보까지 이렇게 부산에 애정이 깊었나 싶을 정도다.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이라는 큰 목표 아래 가덕신공항 건설, 광역교통망 구축, 2030부산엑스포 유치라는 굵직굵직한 사업 등을 해결할 리더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겠다.
그에 더해 부산 경제의 밑바탕을 단단히 할 수 있는 금융 중심지로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은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이래 문현금융단지를 중심으로 꾸준히 기반을 다져왔다. 마침, 홍콩을 떠나고 있는 국제 금융업계를 부산으로 유치한다면 부산이 금융허브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며칠 전 국가균형발전·행정수도추진단은 ‘권역별 메가시티’를 제안하며 “서울을 국제경제금융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회의사당이 이전 하면 생기는 서울 여의도 공백을 ‘글로벌 경제금융수도’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여의도를 한시적 금융 특구로 만들고, 글로벌 금융인재를 양성·유치하고, 외국인 정주 여건 개선 등의 방안을 시행함으로써 홍콩의 금융허브 기능을 서울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권역별 메가시티 논의는 수도권 일극화를 우려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에 나설 많은 후보들은 저마다 더 많은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시민이 행복한 부산, 일자리가 넘치는 부산, 청년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부산 등등. 지역균형발전은 구호가 아니다. 부산을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시민의 편에서 지극한 정성을 다 하는 사람, 그리하여 부산 시민에게 미래를 그려줄 수 있는 변화의 물결이 필요하다. 훗날 2020년 겨울, 부산은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고 기억됐으면 한다.
㈜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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