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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곤쟁이젓과 곤쟁이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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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2-16 19:19:0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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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로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다. 그는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한석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평생 구복(口腹)만 위한 사람”이라고 썼다. 모름지기 사대부는 식탐을 경계하기 마련인데 그는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강화도 화도면 토가의 ‘곤쟁이찌개’.
먹을 것에 대한 그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들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뇌물을 써가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의 수령 자리를 탐했지만, 허균은 오로지 특산물을 맛보기 위해 청탁을 했다. 원하는 지역의 수령이 되어서는 먹고 마시는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그는 심지어 유배형을 받았을 때도 새우와 게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전라도 함열을 유배지로 선택할 정도였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1611년 1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새우도 부안만 못하고, 게도 벽제 것만 못했습니다. 먹을 것만 탐하는 사람으로서는 굶어서 죽겠습니다”고 썼다. 결국 허균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지난 세월 그가 먹었던 산해진미의 맛을 반추하며 책을 썼다. 그것이 바로 조선시대 최초의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이다. ‘도문대작’에는 조선 팔도를 다니며 그가 먹은 128종의 식재료와 향토음식이 기록되어있다.

그 가운데 곤쟁이(紫鰕)에 대한 짧은 품평이 있다. “서해에서 난다. 옹강의 것은 짜고, 통인의 것은 달고, 호서의 것은 매우면서 크다. 의주에서 나는 것은 가늘고 달다”. 곤쟁이는 새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히 다른 개체다. 크기는 1~2㎝ 정도로 매우 작다. ‘자하(紫鰕)’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새우와 달리 연한 자줏빛을 띄기 때문이다.

나는 허균처럼 평생 먹을 것만 탐할 형편은 못되지만 적어도 궁금한 음식은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곤쟁이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서해의 젓갈시장에서 곤쟁이젓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짜기만 할 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허균 같은 당대의 미식가가 이따위 음식에 감동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수소문을 했다. 요즘은 곤쟁이가 강화도에서 봄에만 잠깐 잡힌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강화도 화도면에 있는 ‘토가’라는 음식점에서 곤쟁이젓이 반찬으로 나오는데 그 맛이 예사롭지 않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토가’의 대표 음식은 아침에 직접 만든 순두부에 오로지 강화도에서 잡은 새우젓으로 간을 한 ‘순두부새우젓찌개’다. 우리나라 대중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음식 가운데 가장 순결한 음식으로 꼽을 만한 음식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오로지 곤쟁이젓. 짠맛 속에 피어나는 단맛은 새우젓과는 격이 다른 맛이었다. 작지만 옹골진 맛과 향을 품고 있어 과연 ‘허균이 반할만 한 맛’이 분명했다. 토가에서는 곤쟁이가 잡히는 계절이면 싱싱한 곤쟁이를 뚝배기에 담고 간을 맞출 정도의 물만 부어 곤쟁이찌개를 끓인다. 메뉴에도 없고 돈 내고도 못 먹는, 오로지 그 맛을 아는 단골만 일 년에 한 번 정도 맛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진하게 끓여낸 꽃게찌개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신묘한 맛이다.

매년 봄 토가에서 곤쟁이찌개를 먹을 때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허균 선생, 평생을 식탐만 좇은 선생께서도 이 맛은 모르셨죠. 억울해서 어떡합니까.”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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