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 차에 막 접어든 여권의 모습이 불안하다. 176석의 거대 여당에서 안정감을 찾아볼 수 없다. 거대 여당의 뒷받침을 받는 청와대와 정부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오락가락 정책은 대통령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엇박자 정책으로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총선 압승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급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치기는 마찬가지다. 리얼미터의 7월 4주 차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는 한 달 전인 6월 4주 차보다 8.5%포인트 떨어진 44.8%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부정 평가는 9.3%포인트 상승한 52.0%였다. 문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인 여성과 30대의 긍정 평가도 급락했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율 격차는 13.1%포인트에서 5%포인트로 좁혀졌다. 거듭되는 정책실패에도 자기방어에만 급급한 모습에 핵심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지율 급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는 야당의 발목잡기가 아니라, 다양한 방향에서 속출한 여권발 악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먼저 부동산 정책은 22차례나 발표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물론이고 전월세까지 급상승세를 보인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지만 주무 장관 교체는커녕 오히려 격려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도 벌어졌다. 당 전략위원장은 생방송 토론 뒤 “부동산이 어제오늘 일이냐. (집값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했다가 주워 담기에 급급하다. 정부 정책의 신뢰도는 물론이고 부동산 문제와 관련한 정권의 진정성까지 의심케 한 발언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똘똘한 한 채’로 국민의 속을 파헤쳐 놓았던 터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공직자, 여당 핵심 인사들의 다주택 보유는 앞장서 ‘부동산 불패’를 입증한 꼴이다. 주택공급확대를 위한 그린벨트 해제는 몇 날 며칠을 오락가락하다가 급기야 대통령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당·정·청의 독주체제 구축으로 권력에 대한 외부견제가 힘들어진 것도 문제다. 176석의 민주당은 32년 동안 이어져 온 관행을 무시하고 국회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힘 겨루기는 좌우 진영대결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우리 편’ 감싸기는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의혹에 대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적극 엄호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온갖 의혹도 ‘우리 편’의 일이면 애써 외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고 박원순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보여준 여권의 태도는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결정타였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행위 자체와 함께, 여권의 부적절한 태도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누적돼온 민심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박 전 시장을 미화하고 업적을 기리는 데 급급했고,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집권당 명의의 현수막도 나붙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당 차원의 대응계획을 묻는 질문에 “XX자식”이라고 욕설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와 함께 노영민 비서실장을 보내 조문을 했고, 장례는 서울시장(葬)으로 치러졌다. 청와대와 집권당, 서울시 어느 한 곳에서도 ‘피해자’는 없었다. ‘피해호소인’ ‘피해고소인’이라는 이상한 조어(造語)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공정도 내로남불도 ‘우리끼리’일 때는 해석이 달라졌다. 어디에도 피해자가 설 공간은 없었다.
정권의 핵심지지층인 여성과 30대의 분노가 폭발한 것도 이 지점이다. 국민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집권여당의 모습에 대한 실망이다. 민심이 정권에 보내는 경고장이다. 집권후반기, 급격한 지지율 하락은 자칫 레임덕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집권 4년 차에 40%대 지지율을 놓고 레임덕 운운하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정권 핵심지지층들이 이탈하고, 지지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선(善)’이라는 도덕적 우월주의를 버리고,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잘못된 부분은 과감히 쇄신하고,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만 집권후반기 국민의 신뢰와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반성과 사과에도 인색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반복되지 않는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3명의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미투’로 물러났음에도 아직 정권 차원의 사과는 들어보지 못했다. 총선 민의를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는 것으로 오독한다면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것도 한순간이다.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오만의 그림자를 몰아내고, 총선 압승 직후 “옛 열린우리당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며 다짐하던 초심을 다잡아나갈 시점이다.
김경국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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