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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과 기다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01 19:31:17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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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좋은 씨를 뿌려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영어속담 ‘Everything has its seed’와 한자성어 ‘명불허전(名不虛傳)’과 일맥상통하다.
장기 숙성 중인 프랑스 루시옹지역의 리버잘트와인.
훌륭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좋은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상 악화나 잘못된 방식 탓에 질 낮은 포도가 나오기도 한다. 좋은 포도를 사용했음에도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포도나무 수명은 길며 오래될수록 최상급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수확량이 줄기에 품질·수익성을 고려해 보통 30년 주기로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는다. 포도나무 뿌리를 뽑아낸 포도밭은 3년 이상 휴경기를 가져야 지력을 회복할 수 있고, 어린 포도나무가 자라기 좋은 최적의 상태를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포도나무는 심은 지 3년이 지나야 첫 수확을 할 수 있다.

포도 수확은 품종·날씨·포도밭 상태에 따라 적당한 수확 시기를 기다리다가 포도의 당도·산도가 이상적 균형을 이루었을 때 시작한다. 와인은 탄닌·산도·당도가 높을수록 오크통이나 병 속에서 오래 숙성되면서 더 좋은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과정에서 ‘기다림’은 중요한 변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처럼 와인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의려지망(倚閭之望)’, 부모가 자식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처럼 기다림은 흘러가는 시간에 기대와 의미를 두는 것이다. 섣달그믐날, 일 년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변화는 내게서 조금씩 시작되는 것이다. 남을 바꾸려하지 말고 나를 바꾸자! 감정을 못 이기고 뱉어내는 나쁜 말을 자제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자.

맛과 향이 없는 소주는 주로 울분을 토하고 싶을 때 마신다. 바로 원샷! 기다림이 필요 없다. 와인은 향과 맛을 즐기는 술,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람은 후각과 미각이 만족되면, 부정적인 생각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할 때는 와인을 마시자. 와인은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를 즐기는 술이다. 와인은 낯설고 어려운 외국문화를 외워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와인 이름, 지명, 품종의 지식을 외우기보다 와인의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 허리를 베어내어 / 봄바람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 고운 임 오신 날 밤이 되면 굽이굽이 펴리라’.



지금은 곁에 없는 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노래하는 황진이의 아름다운 시조처럼 와인도, 인생도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으로 더욱 빛날 수 있다.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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