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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로마제국과 미국 /이재호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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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19 19:35:3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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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유럽의 역사는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유럽 중세에는 독일의 오토대제가 로마제국을 복원한다고 신성로마제국을 건국하였지만 이 국가는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었으며 제국도 아니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평가이다.

근세에 이르러 로마제국에 가장 근접했던 제국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제국이었다. 나폴레옹의 영광과 실책, 몰락의 원인은 그가 로마제국을 복원하고 유럽을 통합하려 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꿈은 영국의 강력한 견제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현재 EU(유럽연합)를 탈피하려는 영국의 브렉시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18세기 이후 영국이 대영제국을 만들었지만 대영제국은 해양제국이므로 로마제국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볼 수는 없다. 로마제국을 재건하려는 유럽의 꿈이 영국인이 신대륙에서 세운 미국에서 이루어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민주적인 로마공화국을 세운다는 신념으로 나라를 건국하였다. 미국의 모든 제도는 로마공화국의 제도를 본받았다.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는 로마의 군기인 독수리에서 따온 것이며, 상원을 Senate라고 하는데 로마공화국의 원로원에서 따온 명칭이다. 또 미국의 삼권분립은 로마공화국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본받은 것이다. 훗날 수상이 된 영국의 정치가 맥밀런은 당시 “미국은 새로운 로마제국이다. 유럽은 그리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제국의 엄밀한 정의는 ‘여러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문제 되는 제국은 패권적 제국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은 경제적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라는 유물론적 해석을 했으나 이것은 일면적이다. 착취만으로는 제국이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잠시 나타났다가 스러져가는 제국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되는 제국은 관용의 제국이었다. 제국은 정신적 위신과 사명을 중요시한다. 로마제국은 주변 야만족의 침입을 막고 제국의 주민들에게 평화를 주는 것을 제국의 사명으로 삼았다. 미국은 자신을 ‘초대받은 제국’으로 여기고 자신의 사명을 ‘명백한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냉전 시 미국은 소련 공산주의를 막는 것을 미국의 세계사적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일본 한국에 한 행위는 착취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막고 그 나라를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시작된 중국의 경제적 번영에는 미국의 도움이 컸다. 미국은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고 중국 제품을 엄청나게 구매하고 자유무역의 혜택을 보게 해준 것이다. 미국의 의도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중진국 이상이 되면 한국 등의 예처럼 자연스럽게 민주화가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시진핑이 패권국의 야망을 드러내고 인권 탄압과 공산당 일당독재를 강화하면서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주장으로 ‘해양은 인류의 공유재산’이라는 국제법의 원칙을 위협하자 무역 전쟁이라는 칼을 빼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치·패권의 문제가 연계돼 쉽게 결말이 날 것 같지는 않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입장이 유리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종합적 국력에서 중국은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하고 지원하는 동맹국도 별로 없다.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이 북한밖에 없고 러시아가 지지하는 듯하지만 양국은 기본적으로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여서 서로 믿지 않는다. 무역전쟁은 화웨이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 문제를 단순한 경제문제를 넘어선 안보 문제라고 주장한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한국은 난감한 처지다. 미국과 중국의 압력이 거세기 때문이다. 화웨이 문제에서 미국에 동참하지 않는 프랑스 독일 등도 있지만 미국이 유독 한국에 강요하는 것을 보면 미국은 사드 배치 문제에서 보여준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고 한국을 동맹국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이 미국에 동참하지만 중국은 일본에 한마디도 못 하면서 한국에 압력을 넣는 것을 보면 한국을 만만한 나라로 보는 것 같다. 동맹국의 신뢰를 얻으면서 경제적 실리도 면밀히 따져보는 정부의 현명한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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