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조계종 산하 전국 100여 개 선원 2000여 명의 수좌 스님이 하안거에 들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음력 사월 보름부터 칠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을 하안거, 시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을 동안거 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안거는 초기 불교의 우안거(雨安居, vassa) 전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밧사’는 본래 ‘우기’를 뜻하지만, 대개 수행자들이 석 달 우기 동안 친척이나 지인의 집 또는 암굴에 머무는 우안거를 의미했다. 인도 서데칸 고원의 석굴사원은 원래 수행자들이 우기를 나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것이다. 우기 동안 수행자들이 나다니지 않았던 것은 비에 옷이 젖어 나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무심결에 일어나는 살생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기에는 온갖 벌레가 젖은 땅 위로 기어 나오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길을 가다가 무심결에 벌레를 밟을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불살생계를 서원한 출가수행자들이 바깥출입을 삼갔다는 말이다. 남을 죽여 나를 살찌우는 요즘의 가치 척도로는 감히 잴 수 없는, 참으로 고귀한 삶이었다.
밧사가 안거(安居)라는 말로 한역되는 것처럼, 짐작건대 안거는 공부를 놓고 편히 쉬는 기간이었다. 공부는 석가모니 붓다를 따라 이리저리 유행(流行)하는 삶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편안한 거처나 좋은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부는 그야말로 수하석상(樹下石上)의 삶을 통하여 이뤄졌다. 그러다가 우기가 되면, 고단한 여정을 잠시 쉬면서 비가 그친 후의 공부를 준비했다. 말하자면, 안거는 요즘 아이들의 방학 같은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초기 불교 수행자들의 삶은 차츰 유행에서 정주(定住)로 바뀌었고, 공부의 방식도 이에 적합한 형태로 대체되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북방불교 전통에서는 초기 불교의 우안거가 용맹정진 기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안거는 유행하며 열심히 공부하다가 한 철 쉬는 기간이 아니라, 문 닫아걸고 오로지 참선에 몰두하는 기간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요즘 아이들의 방학이 노는 기간이 아니라, 되레 심화학습 기간으로 바뀐 것과 같다.
유행하는 삶이 공부에 적합한가 아니면 문 닫아걸고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것이 공부에 적합한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수행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불교는 애초 다양성을 존중하는 종교였다. 붓다의 법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만나는 온갖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포용한 것이 불교다. 수하석상의 삶이든, 또는 용맹정진하는 안거든, 불교를 포함한 인도의 수행 전통에서 핵심은 늘 한 가지, ‘마음 작용의 완전한 소멸’이다. 일체의 마음 작용이 사라질 때, 영원한 것과 무상한 것의 분별 또는 무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가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인도의 초기 불교 수행자들은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수하석상의 삶을 택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 불교 전통에서는 자신을 가두는 안거 전통을 꽃피웠다.
초기 불교와는 달리 인도의 요가 전통에서는 애초부터 이동보다는 정지에 초점을 둔 수행 방법을 선호했다. 수행법 자체도 그 핵심은 흐름이나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였다. 심지어 고전 요가에서 호흡 수련의 절정은 ‘저절로 멎는 숨’이었으며, 요가 수행자는 ‘혼자 한적한 곳에 머무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안거는 자신을 가두는 수행 방식이다. 넓게 보면, 초기 불교에서 수하석상의 삶도 ‘흐름’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수행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안거는 ‘정지’에 자신을 가두는 수행 방식이다. 누구나 자신을 가둘 때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폭보다 깊이를 원한다면, 자신을 가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한다. 물론 가두는 곳이 선방일 필요는 없으며, 다리를 틀고 앉아야 가두는 것일 리도 없다. 묵언도 자신을 가두는 주요 수행법 중 하나다. 심지어는 타의로 가두어지는 것도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것 못지않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만일 유배가 없었다면 다산은 없다.” 다산 연구가 박석무 선생의 말이다.
선문대 대학원 통합의학과 교수